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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의 문전성시] 반도체와 부산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  |   입력 : 2026-07-16 18:37:4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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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금성사 부산공장. LG화학 제공
반도체가 한국 산업에 뿌리를 내리려는 즈음인 1980년대의 부산시장을 지낸 인물들은 전두환 정부 시절이라 임명직들이고, 임기가 단명한 사람들이다. 당시는 부산시장을 무슨 동네 반장 임명하듯 했다. 이제 와서 이들의 책임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를 들먹이는 이유는 지역의 민간 전기·전자 기업들이 토종 기술의 텃밭으로 가꾸어놓은 한국 전기·전자 산업의 요람이던 부산을 오늘날 반도체 산업의 깜깜이로 만든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막 트랜지스터에서 집적회로(IC)를 거쳐 반도체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전 단계로서, 오늘의 반도체 기술이 발휘하는 IC의 메모리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특히 1986년은 이후 반도체 산업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 해이다. 미국은 당시 일본의 전자 회사들이 반도체 제품을 독점하다시피 해 인텔 등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되자, 일본을 압박해 ‘미일반도체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일본 반도체 회사들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을 억지로 낮추고, 엔화 가치를 갑자기 올려 일본 반도체 가격을 상승하게 재갈을 물린 엄청난 사건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런 사건 이후에 생긴 일본의 공백에서 경기 수원 일원에 둥지를 틀고, 오늘날 메모리 시장에서의 선두라는 승기를 잡았다. 대만은 이듬해인 1987년 파운드리 회사인 TSMC가 설립돼 지금의 위세에 이른다. 모두 일본 반도체의 수족을 미국이 잡아둔 덕분이다.

문제는 이 시기에 부산의 도시산업 동향과 정책의 양상이다. 원래 부산이 본거지인 한국 최강의 전기·전자 회사인 금성사는 1986년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의 반도체 생산 시설 입찰에 낙찰되자, 그 길로 구미 일대에 반도체와 신기술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사실은 이때 부산시가 앞장서서 금성사를 잡아야 했다. 현대전자는 이 무렵에 경기 이천에 신규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고, 삼성전자는 수원에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원래 부산에서 싹튼 한국 전기·전자 산업이 전국으로 생산 시설이 퍼지는 시기에 부산은 그 어떤 반도체 업체 하나 지원하거나 유치하거나 설립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산 시내 유수의 공장들을 경남 울산 등 외곽 일원으로 내쫓았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당시 책임 있는 공직자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이라도 내고 싶다.

당시에 지금은 굴지의 기업이 된 다양한 전기·전자 관계 회사를 세우던 부산 본거지의 LG그룹이 전국을 상대로 활기찬 신규 시설 투자를 하고 있을 때, 부산시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고 그나마 부산 시내에 있던 여타의 기업체 부지에다 아파트 건립이나 허가하는 뒷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부산 시내에 신규 기업 부지를 제공할 만한 공간이 어느 정도 있던 동래 해운대 광안리 수영 일대에는 1987년부터 중앙정부의 200만 호 공급이라는 집 장사 장단에 맞추어 아파트 공급 계획을 업자들과 함께 집요하고 무분별하게 추진했다. 그때 돈을 좀 번 부산 향토의 주택 건설 회사들이 그 후로 다 잘된 것도 아니다. 한철이 지나니 상당수가 도산했다.

특히 1990년부터 부산시는 시내의 주택 부족 문제에만 매달려서 틈만 나면 아파트를 허가해 후일 시내에 ‘직장 없는 부산’ ‘기업 없는 부산’ ‘인구 줄어드는 부산’을 만들었다. 해운대 신도시, 광안리 아파트 단지, 수영 일대의 아파트 단지 등은 모두 그 시절의 장기 주택 공급 정책으로 지속 추진돼 오늘의 일터 없는 부산을 만들었고, 부산 시내 사람들을 모두 동쪽 바닷가로 몰고 갔다.

이처럼 부산은 경남 경기 울산 등과는 정반대의 도시 정책을 사용해, 다른 도시들이 새로운 산업 도시를 만들 때 부산은 기업 부지를 아파트로, 자연 공간을 도로로 만들었으니 이제 누굴 원망하겠는가. 게다가 남산동, 구서동, 해운대 신시가지, 남천동, 광안리, 동백섬 일원, 재송동, 반여동, 수영공항 일대, 좌동, 우동 등은 아파트 집합 도시 지역으로 하기엔 원래가 외길이고, 지형이 협소하고, 경사가 급하거나 바다가 너무 가깝다. 결국은 외통수의 사람들이 시내로 이동하느라 바다 위로 차를 보내야 하는 비상 도로가 오늘의 광안대교이고, 산을 겹겹이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이 도시고속도로이다.

1986년은 반도체가 당시 IC 기술이 처음으로 1MB(메가바이트), 즉 트랜지스터 100만 개를 집적하는 기술이 성공한 해로서 반도체 기술에서 기념비적인 해이고 반도체 산업의 원년 같은 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러 그 반도체는 2026년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요즘 다른 지방에 큰 반도체 단지를 짓는다는데, 부산은 종무소식이다. 싱가포르는 외곽의 땅을 남기려 애쓰고, 비좁은 원도심에서 복잡해도 같이 살 궁리를 먼저 해왔다. 부산은 땅값 싸고 공사하기 쉬운 외곽부터 먼저 채웠다. 지금 반도체 없는 부산은 40년 전의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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