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떠나는 청년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대개 관성적이다.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고향을 등진다’는 진단이 공식처럼 반복된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현장에서 수많은 청년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내용은 사뭇 다르다. 그들의 진짜 고민은 텅 빈 통장에 대한 걱정보다, “5년 뒤, 10년 뒤 이 도시에서 살아갈 내 모습을 디자인할 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고립감에 가까웠다. 청년들이 마주한 가장 큰 장벽은 일자리의 유무 이전에, 나 다운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정서적 안전망’과 ‘느슨한 연대’의 부족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부산 청년 10명 중 8명(77.1%)은 조건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고향에 남겠다는 강력한 정주 의사를 지닌다. 이토록 뜨거운 정주 의사가 실제 정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청년이 도시에 정서적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관계 자본’이 먼저 형성돼야 한다. 청년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하드웨어나 아파트가 아니라 가정과 일터를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제3의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싹트는 신뢰 기반의 ‘자생적 커뮤니티’다. 다행히 지금 부산 곳곳에는 수십 개의 독립서점에서 매주 자발적으로 열리는 작은 독서모임들을 비롯해, 미취업 청년들을 위해 실무 멘토링을 여는 ‘모두의 캠퍼스’, 영화를 매개로 독립문화를 엮어내는 ‘파도씨네’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연대하는 생태계가 이미 풍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관(官)의 예산에 기댄 관제 조직이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의 열정으로 다져진 이 촘촘한 실핏줄들이야말로 도시의 진짜 자산이다.
민간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자율적으로 협업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행정의 상상을 초월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북페어로 손꼽히는 군산북페어나 전주책쾌의 비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 성공적인 축제들은 행정이 과감하게 주도권을 내려놓고, 민간을 단순 참가자가 아닌 축제를 직접 설계하는 ‘전문 프로그래머이자 기획자’로 대우했을 때 비로소 탄생할 수 있었다. 최근 부산에서도 13개의 독서 커뮤니티가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쳐, 광안리 바닷가에서 200명의 시민과 함께 책을 읽는 ‘리딩 파티’를 성공시키며 그 가능성을 증명한 바 있다. 어떠한 기념품도, 행정적 동원도 없었지만 청년들의 진심과 판을 짜는 자율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관객의 마음에 연속적인 울림을 주는 ‘영혼이 담긴 기획’이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부산의 다양한 문화 관련 정책은 여전히 하청과 용역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정이 미리 정해둔 가이드라인과 통제의 틀을 제시하니, 청년 기획자들 역시 그 입맛에 맞춘 뻔하고 영혼 없는 기획만 양산하게 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부산 청년 정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부산청년주간’만 보더라도 그렇다. 매년 청년 감독을 공개 모집하지만 정작 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청년을 주체로 세웠다는 ‘구색 맞추기’용 간판으로 활용될 뿐, 전체 행사는 결국 대형 용역사가 기획하고 이끌어간다. 이렇게 되어서는 지역을 책임질 진짜 청년 기획자가 양성될 수 없다. 이제는 각 구마다 존재하는 청년센터를 중심으로 거점 청년 기획자들을 먼저 키워내야 한다. 그들이 일상에서 긴 호흡으로 실험하고 쌓아 올린 기획 프로그램들이 청년주간이라는 무대를 통해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도록, 정책을 ‘긴 호흡의 성장 로드맵’으로 대전환하는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행정의 요구에 맞추는 용역이 아니라 완벽한 자율성이며, 성공의 강박을 넘어 무모하게 도전하고 ‘실패할 권리’다.
올해로 만 40세를 맞이하며 법정 청년 연령을 졸업하게 됐다. 청년을 졸업한 선배로서, 이제는 지금 치열하게 자라나는 후배 청년들에게 언제든 기댈 수 있고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이제 우리 사회의 공공과 어른들도 청년들의 도전을 관리하려는 눈이 아닌, 신뢰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돼야 한다. 우리가 청년의 자율성을 믿고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열어줄 때, 부산의 다음 페이지는 떠나지 않는 청년의 활기찬 문장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