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기억력이 나빠 걱정입니다. 친구 이름도 깜빡해요. 이러다 치매 걸릴까 무서워요.” 진료실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기억력 때문에 걱정이 생긴다. 나이가 들면 신체 대부분의 능력이 떨어지는데 뇌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말도 술술 나오지 않고, 판단 실수도 생기고,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집중도 안 되고, 책을 읽어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다. 당연하다. 자연의 섭리다. 뇌의 노화 때문이다.
특히 우리를 곤경에 빠트리는 건망증은 관자놀이 안쪽 ‘해마’의 노화 때문이다. 해마는 기억 학습 정서를 담당하는 뇌다. 정상인이라도 55세가 지나면 그 크기가 매년 1, 2%씩 줄어든다. 근육이 빠지면 근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뇌가 줄면 해당 뇌력도 약해진다. 노화 → 해마 위축 → 기억력 감퇴는 당연한 일이다. 알츠하이머병 같은 치매에서도 의사들은 해마를 유심히 본다. 살이 빠진(위축) 정도가 병의 심각도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해마 위축이 심하면 신경과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가망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해마 위축을 막고 심지어는 살찌울 방법이 있다. 바로 운동이다!
‘운동은 기억력과 사고력을 증강시킨다’. 지난 4월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에 올라온 기사 제목이다. 엉터리 의학 정보에 낚여 곤욕을 치르는 일반인에게 제대로 된 건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하버드 의대에서 만든 인터넷 게시판이니 믿을 만하다. 여기서 열심히 운동하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알려준다.
운동이 몸에 좋은 것은 다 안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뇌에도 좋다고 주장하는 걸까. 성장기 아이라면 뇌도 자라고 좋아지겠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이미 ‘굳어버린’ 어른의 뇌가 좋아진다니 믿을 수 없다고?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20세기적 사고방식이다. 21세기하고도 4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190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스페인 신경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신경계가 성숙한 어른의 뇌는 굳은 뇌라고 했다. 성인의 뇌세포는 죽기만 하지 새로 태어나지는 못한다고 했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경우 어린 개체의 뇌는 매일매일 자란다. 나날이 새로워진다. 사고로 머리를 다친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놀라울 속도로 빨리, 그리고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뇌가 굳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버리는 중이다. 중추신경계에 속하는 뇌세포도 재생된다는 신경발생(neurogenesis) 이론이나 뇌가 임기응변을 위해 스스로 바꾸어 나간다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이론으로 대체되는 중이다.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을 채택한 것처럼 뇌를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지는 중이다.
1960년대 MIT 연구자들은 쥐에서 신경 줄기세포(NSC)를 발견했다. 줄기세포가 있다는 말은 그 조직이 재생된다는 뜻이다. 골수에는 혈액의 줄기세포가 많은데 매일 수명을 다해 폐기되는 혈액세포들을 부지런히 만들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는 성체 포유류의 뇌 피질에서 신경발생을 관찰했고,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에 대한 신경발생 연구가 시작됐다. 1980년대에는 새들이 계절마다 부르는 노래가 다른 이유를 찾던 조류학자가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르는 계절에 뇌의 학습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세포가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새들이 노래를 배우려고 신경세포를 발생시킨다는 의미다.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는 어떨까. 프린스턴대학교 연구진은 영장류의 뇌에서 뉴런 줄기세포를 발견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암 환자)의 뇌에서도 새로 태어난 아기 뉴런을 발견한 연구도 있다. 우리 인간이 죽는 그 순간까지 뇌세포는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아직은 뇌의 극히 일부에서만 확인된 사실이긴 하다).
후속 연구를 통해 신경생성을 촉진하는 인자와 방해하는 인자까지 확인했다. 다양한 자극을 받는 환경 학습 운동은 더 많은 신경세포를 만들고 키웠다. 하지만 스트레스 알코올 등은 신경생성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운동만 따로 생각하면 운동은 신경세포를 새로 자라게 하며, 뇌를 유연하게 하고, 인지기능도 좋아지게 만든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유산소 운동을 한 노인 집단은 해마의 크기가 2%나 커졌지만 운동을 안 하도록 내버려둔 노인은 해마가 1.4% 줄어든다(노화)는 사실을 밝힌 연구도 있다. 깜짝 놀랄 일이다. 간단한 산수로도 10년 후 20% 증가와 14% 손실로 갈리고, 그 차이는 무려 34%나 된다. 이런데도 운동을 차일피일 미룰 것인가!
놀랄 일은 아직 더 남았다. 운동은 이미 뇌가 조금씩 나빠진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치매로 가는 길목이라 하는 경도인지장애(MCI) 노인도 반년 동안 유산소 운동을 한 후 해마가 자랐다는 연구가 있다. 이제 의사들은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자에게도 열심히 운동하시길 권한다. 과거에는 근력이나 심폐 기능에만 좋다고 믿었던 운동, 안 하는 것보다 하면 좋다고 생각했던 운동이 지금은 뇌를 단련시키는 가장 중요한 성장 인자로 새로 태어났다. 그러니 열심히 운동해서 해마를 쑥쑥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