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영화 ‘화양연화’의 한 장면. |
왈츠는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가장 오래된 대중적인 춤곡이다. 빈의 무도회를 거치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왈츠는 19세기 이후 독립적인 악곡으로 많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왈츠는 우아하고 편안한 성격을 지녔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감상과 연주를 위한 음악으로 발전시켜 왈츠의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렸고, 쇼팽은 피아노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을 담은 왈츠를 통해 연주회용 왈츠의 품격을 한층 높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제2번 ‘왈츠’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를 비롯한 많은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작품으로, 우수에 차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슬프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다. 색소폰이 연주하는 고독한 주제를 플루트와 오보에 등이 이어받고, c단조와 Eb장조를 오가며 큰 대비 없이 담담한 정서를 유지한다. 재즈라는 이름을 빌려 왔지만, 실제는 전형적인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음향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곡으로 빈의 황금기와 러시아 제국의 찬란함이 연상된다.
사고로 얼굴을 잃고 가면을 자신의 얼굴에 덧대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 흑백영화 ‘타인의 얼굴’(1966)에서는 일본 현대음악의 거장 타케미츠 토루의 왈츠가 등장한다. 화려한 아코디언의 멜로디와 피아노, 더블베이스의 반주에 맞춰 단발머리의 세련된 음색의 여성 보컬이 독일어로 노래하는 이 곡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가면 속에 숨은 인간의 상상력과 무의식의 힘을 자극하는 영화에 등장한 이국적 애수를 머금은 선율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왈츠를 이야기할 때,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2001)를 놓칠 수 없다.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의 숨 막히는 자태와, 필요 이상으로 정갈하게 빗어 넘긴 양조위의 머릿결처럼 촘촘한 인상이 겹쳐지는 음악, ‘유메지의 테마’다. 같은 공간을 스쳐 지나가며 닿을 듯 말듯한 긴장감을 나타내는 데에는 이만한 선율도 없다.
일본 영화 ‘유메지’(1991)의 메인 타이틀이었던 원곡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연상시키는 노래였지만, 작곡가가 이를 첼로를 주선율로 직접 편곡해 ‘화양연화’에 사용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시간을 붙잡아 둘 것만 같은 첼로의 깊은 음색은 주인공들이 말없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비 내리는 거리와 좁은 아파트 복도, 낡은 골목에서 수없이 엇갈리는 두 사람의 운명은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가 눌러 담는 왈츠 리듬 위를 천천히 떠다닌다. 절제 망설임 억눌림 등으로 끝내 이루지 못한, 허락되지 않은 사랑의 무게를 첼로의 낮은 목소리로 뱉어낸다.
잔혹한 서사와 충격적인 반전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올드보이’(2003)에는 의외로 아름다운 왈츠가 흐른다. 미도의 테마인 ‘더 라스트 왈츠’는 사랑과 복수, 순수와 금기, 연민과 광기가 한데 뒤섞인 영화의 감정을 담아낸다. 특히 사람의 음성과 가장 닮은 악기 중 하나로 불리는 클라리넷의 선율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지만, 영화의 전개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차갑고 낯선 정서를 만들어 낸다. 아름다운 음악이 잔혹한 이야기와 무심하게 공존한다는 강한 이질감이 비극적 상황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오대수”라는 대사와 함께 결국 영화 특유의 기묘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깊게 만든다.
로베르트 슈만은 쇼팽의 왈츠를 두고 “그리운 추억과 이루지 못한 꿈들로 황홀감을 고조시킨다”고 말했다. 왈츠는 한 세기 반을 지나 오늘날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기억과 상처,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함께 담아내는 음악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름날의 애상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것. 화양연화의 절제된 사랑도, 올드보이의 잔혹한 비극도 저마다 다른 얼굴로 그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왈츠란, 아름다운 순간일수록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닮은 음악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