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까지 ‘부산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하지만 좀체 믿기가 쉽지 않다. ‘한류’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20여 년 동안 나는 ‘한류’라는 단어를 온전히 믿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IMF로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어른들의 다소 씁쓸한 자기 객관화(?)를 잊을 만하면 듣곤 했으니까. 물론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말은 아니고, 또 그게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지만, 어찌 됐든 내 작은 인생이 이래저래 치열하게 살아오는 동안 대한민국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무대 삼아 춤을 추며 문화를 퍼트리고 있었다.
이는 마치 서울 사는 사촌 형이 하버드 대학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을 감정이랄까?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집안 전체로는 이상하게도 괜히 기대를 하게 되는 묘한 감정을, ‘한류’라는 단어를 읽을 때마다 느낀다. 그런데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처럼 한류를 좀체 믿지 못하던 내가, 어느덧 부산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내 매장에 방문한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한류는 있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석가모니 부처의 말이 맞다면, 한류는 대한민국이 맺은 화려한 꽃이다. 꽃은 지기 마련. 한류도 언젠가는 힘을 잃을 것이고, 한류를 통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오일머니를 스포츠 산업과 금융 산업으로 열심히 돌리는 중동의 저 부자 나라처럼, 우리도 한류를 장기적인 어떤 가치로 바꾸어 저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지금 부산을 방문하는 저 수백만의 외국인 손님들의 기억 한편에, ‘또 오고 싶은 부산’이라는 문장으로 바꿔서 저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좋은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숙성까지 되는 데다, 운송비도, 관세도 없으니 세상 곳곳으로 값싸게 퍼져나갈 수 있다.
뜨내기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단골손님과는 반대로 뜨내기손님은 한번 거치고 안 볼 손님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종종 장사하시는 분들이 외국인 손님들을 뜨내기손님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싶은데, 유독 외국인 손님들이 많은 곳에 바가지요금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보면 억측까지는 아닐 테다.
그런데 정말 외국인들은 한번 오고 말 사람들일까? 내 경험에 빗대어 보자면 대답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이다. 내 매장에 재방문한 외국인 손님들이 제법 된다. 그들은 부산만 재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매장까지도 재방문한 셈이다. 2024년 겨울에 처음 오셔서 이듬해 아이들까지 데리고 온 싱가포르 부부, 그리고 작년에 방문했다가 올해 대만 술까지 선물로 가져오신 대만 부부. 이분들뿐만 아니라, 대마도에서, 도쿄에서, 미국에서, 세계 각지에서 재방문해 주신 손님들이 많다. 그뿐일까? 재방문을 안 했더라도, 근처에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한국에 간다고 하면, 부산을 추천하고, 우리 매장을 추천하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10평짜리 맥줏집에서조차 글로벌 무대가 펼쳐진 셈인데, 하물며 부산 전체가 합심해서 그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세상엔 돈을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중 하나가 진심이 담긴 마음이다. 소상공인들의 친절과 정직, 그리고 그 친절과 정직을 마주 보며 그들이 얻어 가는 좋은 기억은 얼마를 써야 만들어지는 일인가? 표현이 조금은 거칠지만, 이것은 마음으로 만들고, 긴 안목으로 만드는 엄연한 ‘상품’일 것이다.
잔뜩 경계한 외국인 손님, 혹여 못 알아듣는 말로 안 좋은 말을 하지는 않을지 귀를 쫑긋 세우는 손님들까지도 계신다. 타지에서 친절한 현지 사람을 만나면 오래 기억에 남고, 언젠가 또 한 번 연락을 드리고 싶은 것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와서 재밌고 즐겁게 놀다 가시라’, ‘멀리서 큰맘 먹고 오신 여행, 그 와중에 부산을 선택해 주셨으니 부디 편하고 안전하게 머물다 가시라’,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면 어떨까. 사업이 성공하려면 입소문과 재방문이 중요한 것과 같이 반도체 수출도 좋지만 외국에서 찾아주시는 손님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정직과 정성으로 대하는 일이야 말로 부산을 위한 훌륭한 영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