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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항 북항 전경. 국제신문DB |
1876년 2월 부산이 세계와 마주한 지 올해로 150년을 맞았다. 강압에 의한 개항이라는 아픈 출발이었지만, 부산은 대한민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관문 역할은 제대로 해왔다. 한국전쟁 때는 피란수도와 유엔군 보급기지 역할을 했고, 산업화 시기에는 수출입 물류의 전초기지였다. 그리고 오늘날 부산항은 세계적 환적항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항만의 성장이 곧 도시의 성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화물은 부산을 거쳐 갔지만 금융과 자본, 기업의 의사결정 기능은 수도권에 머물렀다. 항만은 거대해졌으나 청년 일자리는 충분하지 않았고, 세계적 항구도시 부산은 어느덧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가 됐다. 항만 물동량만으로 해양수도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결정된 HMM의 부산 이전은 특정 기업 본사의 이전 그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HMM은 부산 개항 100년이던 1976년 현대상선으로 출범했고, 개항 150년이 되는 시점에 부산을 새 거점으로 삼게 됐다. 국내 최대 국적선사가 부산에 온다는 것은 해운, 항만, 금융, 법률, 연구개발, 인재 양성 기능을 하나의 도시 안에서 엮어 해양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물론 글로벌 해운선사의 간판이 부산에 걸린다는 것만으로 해양도시 경쟁력이 저절로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 이전의 핵심은 주소지가 아니라 결정권이며, 따라서 선대 운영, 항로 전략, 투자 결정, 국제 협상, 연구개발, 인사 기능이 동시에 작동해야 이전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부산에서 항로를 설계하고, 부산에서 미래 선박 투자를 결정하며, 부산에서 글로벌 해운 질서를 읽어내는 시너지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 시점에, 얼마 전 발표된 HMM, 로이드선급, 부산대 간의 협력 체결이 주목받고 있다. 대학이 보유한 액화수소 분야 선박 기술과 연구 역량, HMM의 글로벌 운항 경험, 로이드선급의 국제 인증과 표준 역량이 결합하는 협력 구조이기 때문이다. 단순 산학협력이 아닌, 대학과 국적선사, 세계적 인증기관이 미래 기술과 안전, 국제 표준을 함께 논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많은 상징성을 갖는다. 나아가 항구도시 부산이 화물을 처리하는 도시를 넘어 해양기술과 규칙을 만드는 도시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 연결점에서 국가 에너지 안보와 해양산업의 결합을 바탕으로 하는 항구도시의 역할 구도상에서도 HMM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호르무즈 사태와 같은 통제 불가의 에너지 공급망 위기 대응용 에너지 운송망과 친환경 선박 운항 체계가, 부산을 중심으로 HMM 주도로 작동하게 될 때 완성형 해양수도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HMM의 역할과 기능은 본사의 부산 이전을 계기로 개념적 확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산항을 글로벌 에너지 운송의 축을 담당하는 선단 운항 관리의 거점이자 모항으로 삼고, 울산 거제 창원 여수 광양 등 남해안 산업벨트와 연결해야 한다. 이 구도가 완성되면 HMM은 해운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에너지 공급망을 떠받치는 전략 기업이 될 수 있으며, 부산은 환적물류 항만을 넘어서 에너지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도 있다.
독일은 하팍로이드와 함부르크항을 중심으로 해운·항만·물류·금융 기능을 키웠다. 프랑스 마르세유는 CMA CGM이 상징 기업으로 성장하며 도시의 산업 지형을 바꿨다. 싱가포르는 석유산업과 항만, 글로벌 선사, 선박금융, 정부 정책을 하나의 해양 생태계로 묶어 세계적 석유 허브가 됐다. 이렇듯 거대 선사와 항만정책의 전략적 결합은 물동량의 확장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구조를 바꾸는 동력이 된다.
해양수도. 더 늦기 전에 상승 결합을 만들어 내야 한다. HMM은 지역 중소 해운·물류기업과 상생하고, 해운 스타트업과 친환경 선박 운항, 디지털 선박 관리, 해양금융 활성화의 앵커가 되어야 한다.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선급, 지역 대학, 연구기관, 금융기관이 HMM을 중심으로 연결될 때 부산 해양산업의 두께가 달라진다.
150년 전 부산은 외세의 압력 속에 세계로 열렸다. 앞으로의 150년은 달라야 한다. 부산이 스스로 세계와 연결하고, 선사와 항만, 대학과 기술, 조선과 해운, 에너지 운송을 묶어 새로운 해양질서를 설계해야 한다. 기업 본사를 부산에 두는 일이 능사가 아님을 모두 인지해야 한다. 부산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부산에 뿌리내린 HMM이 지역 산업과 같이 성장해 나갈 때, 부산의 미래 모습은 항만도시를 넘어 글로벌 해양수도의 실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