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시장 지표 중에 투자자 심리를 측정하는 ‘공포탐욕지수’가 있다. 이는 일정기간의 주가 평균치와 기업수익 등을 대입해 100분위로 표시한 것이다. 숫자가 25 이하면 극단적 공포이고, 75를 넘으면 극단적 탐욕으로 본다. 현재 미국 주식시장은 60 정도라고 하니 극단적 탐욕구간에 근접한 상황이다. 동일한 기준을 현재 우리 주식시장에 적용하면 공포지수가 미국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코스피 지수가 반년 만에 3배 넘게 급등한데 반해 기업이익 등 수익성 지표는 반도체를 빼면 고금리와 유가 상승 등으로 대부분 하락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세계 주식시장의 역사를 보면 극단적 탐욕이 지배했던 사례가 드물지 않다. 160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이 문을 열었을 때 유일한 공개 회사였던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1년 만에 액면가의 1000만 배 폭등했다. 미국에서도 1차 대전 직후 다우존스 지수가 반년 만에 10배 치솟다가 두 해 만에 폭락했다. 1990년대 후반 글로벌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닷컴 열풍도 3년 후 버블이 붕괴되면서 폭락했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대폭락 직전 탐욕지수가 80에 근접했다는 점이다.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에는 과거 탐욕의 정점에서 보였던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너도나도 돈다발을 들고 주식시장에 달려드는 점, 초대형 기업들의 주식상장이 줄을 잇는 점, 반도체나 AI 등 특정 산업분야에 투자금이 눈덩이처럼 몰리는 점, 화폐가치가 급락하면서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있음에도 묻지 마 투자자들의 계좌와 예탁금이 급증하는 현상 등이 과도한 탐욕의 증거로 꼽힌다.
주식투자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합법적이고 건전한 투자수단이다. 빚내서 투자를 하든, 생계자금을 꺼내 투자를 하든 개인의 권리다. 그러니 주식투자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할 순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왜곡 우려가 높아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주식투자를 강력 규제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하원 의원은 물론 심지어 대통령까지 주식투자로 재산을 불리는 게 일상이고 관행이다.
문제는 지금의 주식 붐이 정상일까 하는 점이다. AI열풍도 좋고, 풍부한 유동성도 다 좋다. 과거 주식시장의 호황이 한순간 거품처럼 꺼진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을 압도한 과도한 탐욕이었다. 원자재나 생필품 같은 현물시장과 달리 주식시장은 철저히 완전경쟁이 이뤄지는 곳이다. 주가는 매수자와 매도자의 의사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때문에 주식은 본질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상품이다.
기업이 승승장구를 하면 주식은 고가에 거래되지만, 위태롭거나 사줄 사람이 없으면 주식은 휴지가 된다. 만년 적자기업인데도 주가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사례도 많다.
세계 최고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자서전에서 “내일의 주가는 신도 모른다. 주식으로 돈을 벌려면 시장의 심리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시장의 심리를 읽으려면 주식 매수희망자가 얼마나 많은 지 강도를 측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 매수에 나설 때가 매도를 생각할 때라고 버핏은 강조했다. 특히 그는 모든 자본 투자대상 중에서 주식은 접근성이 가장 좋지만 신뢰성은 낮다고 했다. 주식시장의 극단적 탐욕은 자칫 경제 전체를 지하세계로 몰아넣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우리나라 재벌 중에는 순환출자나 계열사 간 거래를 일삼으며 문어발 확장을 통해 거대기업이 된 곳이 많다. 하지만 상당수는 핵심회사의 사업부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리한 사업확장을 위해 계열사 간 빚보증을 선 것이 줄도산을 초래했다. 1990년 후반 외환위기 당시 부도난 대기업이 그들이다. 지금의 주식시장을 보면 탐욕에 눈먼 비이성적 투자자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빚투, 영끌 같은 단어가 언론을 장식하는 걸 보면 왠지 등골이 써늘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