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부산에 3선 시장이 사라졌다. 서울만 해도 불미스러운 일만 없었다면 박원순이 3선을 마쳤을테고, 오세훈은 통합 5선에 성공했다. 경남에서 ‘민선 3연임’ 타이틀은 김혁규가 유일하나, 김두관 홍준표가 더 큰 꿈을 좇느라 도전하지 않았을 뿐 경남도민이 거부한 건 아니다. 부산은 허남식 이후 누구도 장기집권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10년째 단선 또는 재선에 그친다. 박형준은 3선 고지를 눈 앞에서 놓쳤다. 불과 2.6% 포인트 차이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후 기자 주변엔 “부산을 위해 전재수를, 나라를 위해 한동훈을 찍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투표용지의 시장 기표공간을 공란으로 남겼다는 지인도 있다. 보수 지지자로서 전재수를 찍을 수는 없고, 박형준을 밀어주기는 더 싫다는 의사 표시였다. ‘더불어민주당’ 대 ‘국민의힘’, ‘내란심판’ 대 ‘국정심판’이라는 중앙정치 구도가 지방선거판을 압도한 건 모든 지역이 마찬가지다. 서울이나 경남 분위기가 부산보다 보수 정당에 유리했던 게 결코 아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현직이 민주당 후보에게 밀리기는 세 곳이 비슷했다. 그러나 서울과 경남에선 막판 보수 대결집이 이뤄진 반면 부산은 그렇지 못했다. 왜 유독 박형준만 실패했을까.
보궐로 당선된 박형준은 부산시장으로 5년을 보냈다. 이 기간동안 그에게 가장 뼈아픈 대목은 엑스포 유치 실패일 것이다. 그러나 부산 시민은 그것이 온전히 부산시장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점을 만회할 다른 업적이 없는 게 더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박형준이 임기 내내 자신의 대표 브랜드처럼 말했던 ‘15분 도시’는 끝내 시민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막판에 삭발까지 하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통과를 외쳤으나 이 역시 울림이 없었다.
무엇보다 박형준은 대한민국 제2도시 수장에 걸맞은 결기와 행동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인구로 보나 상징성으로 보나 부산과 경남은 위상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시티를 무산시킬 때도, 행정통합을 추진할 때도 박형준은 시종일관 경남도지사 박완수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줬다. ‘글로벌허브법’이나 ‘부산 고용의 질’을 놓고 언론과 진실공방을 벌이던 파이팅을 시정 수행 과정에서 보였더라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지 모른다. 쌓여있는 점수가 없으니 지난 5년간 언론의 직무 유기로 묻혀 있던 ‘엘시티 매각 약속’이나 ‘조현화랑 매출 논란’ 같은 사안이 유독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래 처음으로 부산시장직을 잡았다. 직전 서병수 시정에서 ‘엘시티 게이트’ 등으로 부산시청이 9번이나 압수수색 당하는 광경을 부산 시민이 목도한 직후다. 시장 최측근을 비롯한 시청 고위직부터 하위직까지 각종 비위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야말로 민주당에 기회를 줘보자는 변화의 바람이 크게 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사리 차지한 지방정권을 민주당은 어떻게 소모했는지 이제 되돌아 봐야 한다.
성추문을 일으킨 오거돈은 온 부산 시민을 부끄럽게 한 채 임기 2년도 못 채우고 물러났다. 그것만이 아니다. 재임 내내 비선 실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정무직(어공) 등쌀에 기존 공무원(늘공)들의 불만과 자조가 만연했다. 9급으로 입직해 20년을 일해도 못 오를 사무관직을 진영 인사들이 쉽게 꿰찬 건 시정농단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임자 정책 뒤집기는 다반사였다. 오거돈 체제에서 호가호위하던 이들이 전재수 체제에서 귀환할까 하는 우려가 당장 부상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민심의 두려움을 새삼 확인시켰다. 퇴행하는 보수 야당에는 매서운 회초리를 들고 폭주하는 여당에는 강력한 견제구를 날렸다. 그러나 진짜 서늘한 민심을 보여준 곳은 정부 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반감을 가진 한강벨트의 몰표로 ‘오세훈 3연임’을 가능하게 한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다. 시장은 대통령 이재명과 한 배를 탄 전재수를 선택하고, 북갑 국회의원은 이재명이 꽂은 하정우가 아니라 한동훈을 택했다. 21, 22대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의 마지막 보루였던 부산의 절묘한 균형감각이다.
부산 시민은 ‘까르띠에’를 결코 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전재수를 뽑은 이유는 분명하다. 해양수산부를 단 6개월만에 부산으로 옮기고 HMM을 끌고온 성과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산의 처지가 절박하다. 6·3 선거는 ‘누가 부산을 바꿀 수 있나’에 대한 자문자답이었던 셈이다. 이 기대를 배반하면 부산 시민은 언제든 돌아선다. 손에 잡히는 것 없는 숫자놀음, 자칭 측근들의 점령군 행세, 토호들과 얽히고설킨 부정비리부패는 전재수가 먼저 새겨야 할 ‘실패학 교과서’일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