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재임 4년 동안의 경기침체를 부각시킨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유명한 슬로건으로 경기 회복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면서 걸프전 승리 덕에 지지율이 90%에 달했던 부시를 이길 수 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로 경제적 풍요를 공언하며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와 빈곤 탈출을 위한 제조업 부흥(Make in India)을 부르짖으며 3선에 연임한 인도 모디 총리 등의 사례도 미래 경제 후생이 증가할 것이라는 유권자의 전망이 반영된 투표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도 이처럼 경제 후생을 고려하여 한 표를 행사하는 경제적 투표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 전망적 투표 특성을 보이는 앞의 예들과는 달리 과거의 경제성과를 기준으로 삼는 회고적 투표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여기에 더해 이념 성향이 강하지 않은 중도층을 중심으로 국가나 사회 지향적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경제적 투표 현상이 목도된다.
지난주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세칭 한강 벨트 유권자의 선택은 세금과 규제 강화로 인한 아파트 가격 하락 즉, 자기의 경제 후생 감소에 대한 일종의 응징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유권자로서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판단에 앞서 자신의 부동산 자산 가치 하락이 우선한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쉽게 잊어도 빼앗긴 재산은 잊지 못한다’는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통찰이 현대판 군주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에 놀랍기까지 하다.
이처럼 경제적 투표 현상이 강화되는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최근 팬데믹,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 경제 불확실성이 변수가 아니라 이미 상수로 자리 잡았고 그 영향으로 저성장의 고착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는 자신의 경제 후생 증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감소하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먹고살기 위한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가 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자원 배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투표를 통해 자기 후생 증가를 약속하거나 가져다줄 수 있는 정치인을 당선시키거나, 내 후생을 감소시켰거나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은 낙선시키는 선택을 하려는 유인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투표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자신의 한 표가 선거 결과에 미칠 영향이 매우 낮은 경제학적으로 비합리적 행위임에도 투표에 참여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 경제적 투표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경제적 투표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국가가 증가하고 있다. 관세 폭탄을 즐기고 있는 미국의 횡포만이 아니다. 유럽연합은 규제와 각종 보조금을 통해 장벽을 쌓고 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자원을 무기화하고 있다.
자국 경제 후생을 키우기 위한 국가 간의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이 종국에는 글로벌 경제 규모를 축소시키는 음합게임(negative-sum)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이론이 역사적 유물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의 경우도 수도권 부동산 감세로 매물 잠김 현상에 따른 가격 상승, 세수 부족, 자산 양극화 등의 부정적 효과를 경험했다. 중·장기적으로 세대 갈등이나 지방소멸 가속화라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당장 눈앞의 후생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가경제 후생을 고려한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공동체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민주, 정의와 공정, 연대와 포용, 인권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혹여 훼손되면 자기중심적 경제적 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 전략을 객관적 시각에서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져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듯싶다.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이 없다지만 후보 공약집 한번 보지 않고 이념 정당 인물 선심성 공약에 열광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