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친오빠는 언제나 닮고 싶은 롤모델이었다. 공부도, 일도 곧잘 해내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던 오빠가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을 때, 나는 ‘나 역시 오빠처럼 살겠노라’ 다짐했다. 천사 같은 조카들이 주는 행복은 오빠의 표현을 빌리자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우주”와 같았고, 그 평온한 가족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결혼이란 결국 그런 따뜻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따뜻한 풍경 뒤로 한 걸음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곳엔 전혀 다른 치열한 ‘전쟁터’가 있었다. 오빠와 새언니가 복직하면서 마주한 현실은 롤모델이었던 나의 로망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부모의 삶은 너무 가혹했다. 서울에 계신 어른들이 기꺼이 육아를 도와주시는 감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오빠 부부의 표정에서는 숨길 수 없는 번아웃이 읽혔다. 업무만으로도 이미 방전된 몸을 이끌고 다시 육아라는 ‘제2의 출근’을 하는 삶. 여기에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집값과 교육비라는 경제적 압박까지 더해지니, 행복의 무게만큼이나 고통의 무게도 상당해 보였다. 오빠네 부부처럼 어른들이 육아에 도움을 주시지 못하는 부부들은 더 발을 동동 구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 중 절반이 자녀의 사정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비자발적 돌봄을 한다고 하니 이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게 된 솔직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결혼이 단순한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기력을 소진해야 겨우 버텨낼 수 있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일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내고 지원금을 늘린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맞벌이 부부들이 체감하는 공백은 여전히 크다. 아이가 갑자기 아픈 날이면 온 집안에 비상이 걸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경력 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다” “사회가 아이를 양육한다”는 말은 때로 공허하고 무책임한 조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오빠와 새언니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조카들이 주는 그 경이로운 기쁨을 나 역시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그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앞날에 뿌려진 수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 선택은 결코 쉬울 수 없다. 이러한 장면은 비단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결혼을 미루거나 선택하지 않는 또래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누군가는 “좋은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결혼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거쳐가는 단계’가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 감당 가능한 주거 비용, 그리고 최소한의 미래 확신이 갖춰져야만 비로소 고려할 수 있는 ‘조건부 선택지’가 됐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치솟은 집값은 결혼의 출발선 자체를 높여버렸고, 출산과 육아 부담은 그 이후의 삶까지 불투명하게 만든다.
결국 많은 이들이 결혼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유예’하거나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몇십만 원의 일시적인 지원금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모 개인의 희생이나 조부모의 헌신에만 기대는 구조가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대기업이나 공직사회가 아닌 곳에서도 일과 육아가 공존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환경을 구축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이 좌절되지 않는 실질적인 주거 대책이 절실하다.
결혼과 출산이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된 이 아이러니한 시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다. 그저 오빠가 말했던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행복’을, 우리 세대 누구나 커다란 용기를 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결혼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왜 망설이게 됐는지를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