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위상은 정치권력의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지역의 위상도 매한가지다. 그렇기에 수도권과의 현저한 격차 속에 추락일로에 놓인 비수도권의 처지가 비수도권 정치권력의 위상과 수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은 언제나 유효하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등 수도권 정치인들이 단순히 인구 수가 많은 지역을 대표한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다. 피를 말리는 정당 간 경쟁 구도에 뼈를 깎는 개인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대통령 2명(이재명 이명박)에 오세훈 김문수 손학규 송영길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 출신 정치인은 전국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비수도권에서는 그들만의 리그(특정 정당 내 경쟁)에서 예측 가능한 동네 골목대장 선거(본선)만 있었다. 문정수 안상영 허남식 서병수 박형준으로 이어지는 부산시장은 개인의 능력을 떠나 정당 간 대결 구도가 실종된 정치지형에서 제아무리 희대의 정책을 내놓고 시민의 지지를 받는다고 한들 주목받을 리 만무했다.
그랬던 부산은 2026년 4월 상전벽해했다. 모든 선거구에 후보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부산 민주당이 구청장·광역의원 후보 추천을 위해 경선을 실시하는가 하면 부산 국민의힘은 과거 안중에도 없던 본선 경쟁력을 염두에 둔 공천 심사를 진행했다. 더 나아가 부산시장 선거가 서울시장 선거보다 이목을 모은다. 서울 경기도와 충청권 단체장이 아닌 보수 세력의 텃밭 부산에서 시장 선거가 이토록 주목받은 적은 역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2026년 지방선거에서는 양당이 부산에서 오히려 수도권보다 더 경쟁할 수 있는 정치지형이 조성된 것이다.
부산시장 후보도 역대 가장 강력하다. 전재수는 부산에서만 3선을 한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자 현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점에서 역대 민주당 후보 중 독보적이다. 박형준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 밑그림을 설계한 당대의 전략가로,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역대 부산시장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만년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던 부산 민주당과 절대 여당의 지위가 흔들리는 극한의 위기로 내몰린 부산 국민의힘이 시당의 명운을 걸고 부산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로 전재수와 박형준을 선택한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독과점이 아닌 경쟁 체제가 들어섰고, 서로 조금이라도 나은 제품을 선보이기 위한 경쟁을 펼치니 부산에서도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면서 가성비를 따질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부산과 시민에게 전례 없는 호기다.
앞선 칼럼에서 수차례 언급한 바 수도권과 비수도권, 부산과 인천·경기의 수준 차이는 정치적 지형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정당과 부산시장에 앞서 일방의 정치지형을 만든 부산시민에게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건방진 국민의힘’과 선거비용만 보전받아 한몫 챙기겠다는 ‘저질의 민주당’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부산시민이었다.
20년 이상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취재를 한 지역언론의 기자로서 2026년 이후 총선과 지방선거, 대선에서 부산의 표심이 전국 선거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환경을 시민이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지역균형발전 정책보다 효과적이라고 단언한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이길 수 있는, 그 영리한 표심은 오늘날의 수도권처럼 앞으로 부산과 시민의 윤택은 물론 수도권 일극체제를 타파하는 최적의 기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참 지났지만 더 늦기 전에 부산시민도 정치력과 정치적 장래가 있는 시장을 만나야 한다. 박형준과 전재수, 전재수와 박형준 중 누구를 지지할지 그 기준도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선호 정당 후보 여부, 여야를 떠나 누가 부산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그래서 전국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선거를 한 달 앞둔 민감한 시기, 지겨운 잔소리로 들릴지언정 이번에도 이 말 만큼은 빠뜨릴 수가 없다. 부산시장의 위상이 부산과 시민의 수준이자 자존심이다.
송진영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