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비웃고 틀을 부순다. 화성 이주라는 무모한 상상을 현실의 언어로 던진다. 관습을 향한 거침없는 독설과 규제의 경계를 허무는 돌발 행보는 대중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이다. 그의 기행 이면에는 정체된 시대를 강타하는 압도적 혁신, 즉 파괴를 통한 창조의 본능이 서려 있다. 명리학에서는 이런 기질을 ‘상관(傷官)’이라 부른다.
상관은 말 그대로 ‘관(官)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관이란 법과 제도, 규칙과 명분처럼 사회를 지탱하는 기존 질서를 의미한다. 상관은 이 질서에 순응하기보다 그 전제를 흔든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기준에 질문을 던지고, 익숙한 판을 해체해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다. 천재적인 두뇌 회전과 비판적 사고, 틀을 깨는 창의성이 날카로운 통찰과 결합할 때, 상관은 시대를 앞지르는 창신(創新)의 동력이 된다.
우리 역사에서 이러한 상관 기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군주가 광해군이다. 그는 위로 솟구치고 밖으로 발산하는 기운이 강한 인물이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의 현장에서 분조(分朝)를 이끌며 증명했듯, 그는 전례를 답습하기보다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합리적으로 돌파하려 했던 실용주의 통치자였다.
즉위 후 그의 통치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공납을 토지 기준으로 바꾼 대동법, 기득권의 반발을 무릅쓴 양전 사업,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중립 외교까지. 기존 질서와 상식, 즉 ‘관(官)’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선택들이었다. 그는 틀린 왕이 아니라, 너무 앞서간 군주였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대였다. 질서와 안정을 신성시하던 당시 사회는 상관 기질의 왕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광해군의 정책은 혁신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읽혔고, 창신은 곧 반정의 빌미가 되었다. 명분의 틀에 갇힌 사회적 통념은 상관적 사유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상관은 양날의 검이다. 인격적 수양과 인문적 성찰이 결여된 상관은 대안 없는 비난에 머물며, 소인배나 독설가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광해군은 달랐다. 엄격한 교육과 전쟁이라는 극한의 체험은 그의 기질을 정제된 지성으로 다듬어 놓았다. 비록 실패한 군주로 기록되었을지언정, 그가 보여준 파격은 일탈이 아니라 정책이었고, 변덕이 아니라 시대의 대안이었다. 그의 몰락은 개인의 결함이라기보다, 상관의 창신을 위협으로 받아들인 완고한 시대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인공지능(AI)의 시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금, 데이터 군집 속에서 상관 기질을 찾아내 활용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AI가 내놓는 답은 방대한 데이터가 만들어낸 확률적 평균치에 불과하다. 평균에 머무르는 한, 새로운 길은 열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속도가 아니라, 기계의 관성을 흔들 질문의 깊이다.
상관 기질을 가진 이의 사고는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평균의 벽을 허물고, 흩어진 정보들을 새로운 개념으로 엮어내는 창조적 통로가 된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던질 때 기계는 가장 무난한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전제를 흔들고 옥석을 가리는 ‘상관적 사유’가 프롬프트에 투영되는 순간, 기계는 예측을 넘어 창달(暢達)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비로소 사고의 주체는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기술의 정점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결국 도구를 부리는 인간의 독창적 사유다. 기존의 질서와 관념의 울타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사유의 틀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움과 성찰로 정제된 ‘상관적 사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