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을 때마다 화가 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기회를 주는 도시, 책임지는 태도, 공존해야 한다는 당연한 소리를 외칠 때인데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데요. 정치인이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냈다면, 출근하라는 말을 듣기 어려울 겁니다. 또는 그렇게 물건을 팔았다면, 악성 재고에 허덕일 테죠. 보통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 혹은 우리 물건은 진짜 좋다며 설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귀사의 발전에 기여할 것인지, 우리 물건을 사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말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니까요.
헌법 제1조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119조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적시돼 있죠. 그렇다고 “와! 우리는 민주공화국이야, 자유경제를 보장하고 있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지에 따라 달라지죠.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하면 어떻게 운동하고 식단 관리할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하는 겁니다.
여기저기서 지방을 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청년의 수도권 유출이 늘 지적됩니다. 동시에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혀를 찹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지금 있을까, 싶은데도 계속 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대안 없는 문제 제기에 대꾸할 것도 사라져, 이제는 귀가 아플 정도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고민해 봅니다. 왜 수도권으로 청년이 빠져나가면 안 될까요? 내 옆 사람, 그리고 그 옆 사람도 문제라고 하니 자명하듯 받아들인 건 아닐까요. 물론, 수도권 과밀화 문제와 지방 생존 등의 이슈로 충분히 설명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청년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으면 월급을 더 많이 받나요? 문화 혜택은요? 또 정주 여건은 수도권보다 훨씬 나은가요? 그러니까 예컨대 부산 청년이 대학 졸업 후에 서울로 가지 않으면 무엇이 더 나으냐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거죠.
국가데이터 자료(2023년 기준)를 살펴보면, 청년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직장을 옮겼을 때 소득이 평균 23% 증가했습니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일자리, 주거·복지, 문화·여가활동 등 청년친화지수 상위 10% 지역은 대부분 수도권에 해당했습니다. 수도권으로 가면 떡 하나 더 주겠다는데, 이걸 기회니, 책임이니, 공존과 같은 두루뭉술한 구호로 설득이 되겠느냐는 겁니다. 심지어 그런 구호를 부산 경남 울산의 지역명을 가려 보면 어느 지역의 구호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습니다. 밥 한 번 먹어도 줄을 기다려야 하는 유명 맛집까지 구태여 가는 시대에서, 공장에서 마구 찍어낸 듯한 상품을 좌판에 깔아두고 목청껏 사라고 고함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요.
그래서 거창한 목표보다 당장에 청년의 삶, 나아가 지역 주민 모두가 만족할 구체적인 정책부터 꾸렸으면 합니다. 고급 한정식의 화려함을 원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진정으로 맛있는 돼지국밥 한 그릇이 더 와닿으니까요. 예컨대 부산에서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하면 부산 경찰이 끝까지 추적하더라. 부산 도로의 아스팔트와 도로선은 정말 깔끔하고 명확하더라. 부산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위생 관리가 잘 돼 있더라와 같은 생활에 밀접한 부분부터 건드리는 겁니다. 아니라면, 부산에서 창업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소 3년간 공유오피스 고정석을 제공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별로 경쟁적으로 돈도 나눠 주는데, 돈 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왜 창업 공간을 못 주겠습니까.
정책의 효능감을 곧바로 느낄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하자는 거죠. 물론, 그렇게 한다고 청년이 떠나지 않을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연 없는 무덤은 없습니다. 다이어트를 선언하면, 그 다음 날 회식 약속이 잡히고요. 지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야속하게도 신호등마다 빨간불이 걸립니다. 실천은 늘 어렵습니다. 이에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목표로 합리성의 폭을 키워놓기도 하죠.
그러나 정치인은 그러면 안 됩니다. 어떤 공약을 내밀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청년 정치인이 많을 겁니다. 이번에는 뜬구름 잡거나 하나 마나 한 얘기가 아니라 내실 있는 정책을 꺼내놓길 바랍니다. 청년 정치인의 ‘청년’이 ‘아직 미숙한’, ‘나이만 젊은’으로 통하지 않고 ‘신선한’, ‘추진력 있는’으로 해석되길 기대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