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왜곡 처벌법’이 오는 6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동안 학술적 연구라는 미명하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끊이지 않는 혐오를 조장해 온 세력에 법적 제동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혐오와 모욕을 조장하는 행태,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는 비단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4·3, 5·18 등 민주화 이후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과거사 청산 전반에 대한 부정이다. 또 인권과 민주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며, 그 뿌리는 이른바 역사수정주의와 맞닿아 있다.
1987년 민주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추진돼 온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이미 30년 이상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 민주화의 중심적 어젠다로서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공 사례로서 널리 알려진 것만큼이나 한국의 과거사 청산 또한 국제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그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2023년 가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유엔 인권이사회 진실·정의·배상·재발 방지 특별보고관 파비안 살비올리의 ‘대한민국 방문 조사’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가 식민지 지배, 전쟁, 권위주의 체제라는 중층적 폭력의 유산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를 이행기 정의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보고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이루어진 각종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과거사 관련 특별법 제정, 국가 차원의 사과와 기념·기억화 제도의 도입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광주 5·18, 제주 4·3,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권위주의 시기의 불법 구금과 고문 사건 등에 대해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기록화 절차를 제도화한 점을 중요한 성과로 지적했다. 또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과거 인권 침해가 더 이상 사적 기억이나 주변화된 서사로만 남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과 이와 함께 부분적으로 보상과 명예 회복 조치가 이루어진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성과가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개별 사건, 피해 유형별로 분절된 대응에 머물러 왔음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가장 핵심적 문제로 가해자에 대한 형사 책임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곧 책임자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이행기 정의가 ‘사법 없는 진실’ 혹은 ‘배상 없는 화해’로 축소되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또 식민지 시기의 인권 침해 문제에서 한국 정부의 접근이 피해자 중심의 원칙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것도 한국 과거사 청산의 한계로 지적했는데, 이는 2015년 한일 합의와 강제 동원 제3자 변제 방식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요컨대, 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이행기 정의가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완’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유엔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의 과거사 청산을 돌이켜보건대, 과거사 진상 규명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시행이 곧바로 과거사 청산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진상 규명 그 자체는 과거사 청산의 기본적 조건이지만, 국가 폭력의 책임자와 가해자의 처벌 없이는 과거사를 청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책임자 처벌은 이러저러한 정치적 이유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물론 피해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도 있었고 부분적인 보상도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과거사 청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지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믹 잭슨 감독의 영화 ‘나는 부정한다’에서와 같은 역사 왜곡의 현실을 거듭 마주해야 했던 까닭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위안부 왜곡 처벌법’은 과거사의 왜곡과 피해자 혐오에 대해 큰 경종을 울릴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극우세력의 행태를 되짚어보건대, 그들의 반인권적 반민주적 혐오가 일거에 불식되리라 낙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역사교육을 통한 과거사 청산의 사회적 내면화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이제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한 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제2기 때의 시행착오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토대로 출범한 만큼 현 정부와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를 향한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그 가운데 중요한 과제의 하나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더불어 국가 폭력의 책임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과거사 재단의 설립 등을 포함해 미완의 과거사 청산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등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것일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도 이제는 진상 규명의 차원을 넘어서 과거사 정리 이후의 비전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