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처음 접한 건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통해서다. 정신병동에 입원한 딸의 꿈은 파일럿. 딸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정신병동에서 치른 지능검사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IQ 71.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엄마는 딸에게 지능검사를 다시 하자고 재촉했다. 내심 엄마는 딸의 IQ가 더 높이 대신, 더 낮게 나오기를 바랐다. IQ 70 이하로 지적 장애가 되면 특수학교에 갈 수 있어서다. 엄마는 그런 수치를 원했고, 딸은 파일럿의 꿈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 딸은 경계선 지능인이다.
그들, 경계선 지능인은 우리 곁에 있다. 더구나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연구원이 발간한 ‘부산시 경계선 지능인 지원 방안’을 보면 경계선 지능인은 통상 지능의 정규 분포에 따라 IQ 71~84 사이에 해당하는 비율인 13.59%로 추산된다. 올 1월 부산 인구를 감안하면 약 44만 명이 해당된다. 같은 시기 해운대구 인구 37만여 명보다 많다.
이렇게 많지만 그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먼저 신체적으로 불편함이 없다. 지적인 부분에서도 곧바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관심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간단하게 ‘장애’ 범주에 넣을 수 없다. 지금까지 그들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제도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일반인과 그들의 다른 점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느림’이다. 그들은 단지 느릴 뿐이다. 문제는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다. 빠른 게 대우 받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도래하면서 그들의 느림은 더 도드라지고 있다.
그들의 삶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앞서 드라마 속 내용이 현실에서도 재연된다. 경계선 지능 아이를 둔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검사받기 전날 아이 잠을 안 재워서 컨디션을 저조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애매한 점수가 나오면 지적 장애 판정을 못 받으니 아예 점수를 떨어뜨리기 위해 그러는 거죠. 장애 등급을 받기 위해 고민하는 부모, 들어보셨나요?”
학교에선 정규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그들을 위한 교육은 아직 미미하다. 교우 관계도 힘겹다. 언어폭력에 시달리기도 하고,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악착같이 매달린다. 한 부모는 “배우면 천천히 성장하지만 멈추면 바로 퇴보한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짊어진 경제적 부담은 만만찮다. 학부모들이 경계선 지능 자녀의 지능검사 결과를 일부러 낮추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경계선 지능은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대한 빨리 적절한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선 사회적 편견 때문에 조기 발견과 교육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성인이 되면 상황은 더욱더 악화된다. 취업 기회가 많지 않고 어렵게 일자리를 얻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느리다는 이유에서다. 사회에 나가지 못한 경계선 지능인이 향하는 곳은 집이다. 집에서 나오지 않고 사회와 격리된다.
그동안 우리는 촘촘하게 복지 체계를 짰다. 이제는 그들을 복지 체계에 편입시켜야 한다. 문제는 법적 근거다. 아직 법적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 21, 22대 국회에서 14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하나도 없다. 법적 근거가 없으니 후속 조치도 어렵다. 경계선 지능인과 가족, 지원 기관 등은 생애주기별 데이터를 관리하고 지원의 연속성을 보장하려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려면 법안 마련이 첫걸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 등이 몇 년 전부터 관심을 보이면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시는 지난 18일 ‘경계선 지능인 지원 5개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경계선 지능 성인 60명과 미성년의 주보호자 140명 등 2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시는 2030년까지 63억 원을 투입해 진단 체계 구축과 실태 파악, 생애주기별 성장 지원,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을 골자로 하는 3대 전략과 12개 세부 과제를 추진한다. 아울러 2028년을 목표로 자체적인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느림을 이해하고,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 참, 경계선 지능인을 ‘그들’이라고 분리해서 부르는 것부터 바꿔야겠다. 그냥 ‘우리’다. ‘우리’ 중 일부는 단지 느릴 뿐이다.
김희국 디지털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