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세계 질서가 유례없는 혼돈의 시대로 빨려 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규범 기반 자유주의 질서’는 희미하고, 오직 미국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방적 대외정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동맹국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들이대는 방위비 분담금과 고율 관세 압박은 단순한 안보와 경제정책을 넘어, 국제사회의 상호 신뢰라는 공공재를 파괴하는 ‘위험한 도박’으로 치닫고 있다. 세종연구소 발간 ‘2026년 국제질서 전망’ 보고서에서 현재 글로벌 환경을 ‘전례 없는 변곡점’으로 규정할 만큼 거대한 불확실성이 국제사회에서 이제는 상수가 되었다.
이러한 트럼프식 세계관의 기저에 행동경제학 창시자인 카너먼(D. Kahneman)이 제시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의 병리적 발현이 자리 잡고 있다. 전망이론의 핵심인 ‘손실회피성’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훨씬 고통스럽게 느끼는(보통 2~2.5배) 인간의 비합리성을 말한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 미국의 위상을 ‘세계를 리드하는 패권국’이 아니라, 동맹국에 안보를 대가 없이 ‘무임승차’로 제공하고, 적대국에 제조업 일자리를 ‘도둑맞은’ 피해자로 확신한다. 따라서 전후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미국에 손실만 유발하는 폐기되어야 할 이념에 불과하다. 전망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 구간에서 위험을 회피하지만, 손실 구간에 있다고 믿을 때 그 손해를 단번에 회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위험을 감수한다. 트럼프가 보편적 관세 부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 무용론과 위상 약화 전략, 기후협약 탈퇴, 캐나다 및 그린란드 미국 영토 편입 전략 등 기존 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파격적인 카드를 거침없이 내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설정한 이득과 손실의 ‘기준점’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전후 미국이 누려온 압도적 패권기를 기준점으로 삼아, 현재의 다극화된 질서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모두 ‘빼앗긴 이득’으로 간주한다. 이 과정에서 동맹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가 아닌 미국 이익을 갉아먹는 ‘무임승차자’로 전락했다. 따라서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국제기구 탈퇴 및 규범 무시와 보편적 관세 부과 등 극단적 수단도 서슴지 않는 ‘위험 추구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한 대법원의 위법 판결도 국가안보·무역법을 활용하고 관세 환급 문제도 지루한 법적 대응을 통해 기존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 행보가 반복될수록 국제사회의 대응도 변한다. 전망이론의 또 다른 축인 ‘민감도 체감성’은 자극이 반복될수록 그 효과가 감소함을 뜻한다. 처음엔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휘청이던 국가들도 이제는 미국의 예측 불가능성을 상수로 두고 생존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유럽은 독자적 방위 역량, 글로벌 중견국들은 포괄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아시아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 없는 공급망 재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트럼프가 ‘손실’을 회복하기 위한 강수들이 역설적으로 동맹 이탈과 미국 고립이라는 더 큰 손실을 초래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초기 미국의 대외정책이 상대국에 충격을 줄지 모르나, 반복되는 위협은 국제사회의 면역력만 키울 뿐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스스로 만든 규칙을 파괴하며 얻는 단기적 ‘이익’은, 전 세계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며 발생하는 ‘시스템 붕괴’라는 거대한 손실에 비하면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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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례 없는 대전환’의 시대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안보 전략은 전통적 군사동맹을 넘어 우주·사이버·반도체·AI 분야를 포함하는 한미동맹을 고도화하고 미중 간 일방적 편승이 아닌 국익 중심의 선택적 협력이 가능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한다. 경제 전략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탈중국·탈리스크’ 전략과 함께 WTO 무력화에 대응하여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 또한 아세안 인도 중동 유럽과 전략적 경제 협력을 확대하여 시장 다변화를 강화한다. 기술·산업 전략은 기술주권 확보 목표하에 반도체 배터리 AI 양자기술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공동 연구에 적극 참여하여 표준을 선점하고 기술 블록화에 대비한 관리 능력을 확보한다. 따라서 인재 양성과 첨단 분야 인재 유치 전략은 필수적이다. 또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법 등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산업을 육성하되 국내 생산 기반 유지와 해외 전략적 투자 병행 전략 기반 산업정책을 추구한다. 전체적으로 기존 동맹을 강화하여 충격을 흡수하는 한편, 안보·경제·기술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이중 전략과 이것을 국제사회에서 실행하는 다층적·다변화 외교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