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길을 잃었다

안재철 상지건축부설연구소 연구본부장

  • 안재철 상지건축부설연구소 연구본부장
  •  |   입력 : 2026-02-19 18:51:59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마태복음의 ‘길 잃은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비유 중 하나이다. 죄를 짓고 있거나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의 ‘길을 잃었다’는 현대에서 인간 존엄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길을 잃었다. 예전부터 눈여겨본 한 건축가가 있다. SNS ‘진짜공간’에서 사라진 도시의 흔적, 이를테면 타일로 마감된 주택 담장이라든지, 높은 음자리표를 닮은 옛 방범창 사진 등 게시물에서 건축가가 사랑하는 공간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기존 건축가와 다른 시각으로 도시를 탐험하는 그 건축가는 급변하게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잃고 행복하게 헤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너희 건축가들은 길을 잃지 않았느냐 묻는 듯했다.

길을 잃었다. ‘진짜공간’의 홍윤주 건축가는 최근 ‘담장 없는 도시 :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 및 소셜 스트리트 조성 방안’이라는 정책 제안을 ‘소통24’에 올렸다. 점점 거대 요새가 되어가는 아파트 단지로 인해 현대 도시인들이 길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개발 때 공공 도로가 단지에 포함될 경우, 해당 구간은 ‘도시 보행망의 필수 요소’로 정의하여 완전 개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해외와 달리 거대 단지로 개발되고 있는 한국의 아파트는, 단지 규모와 화려한 브랜드명, 입지에 따른 계급화 심리와 이웃에 대한 사회적 배제, 폐쇄적 커뮤니티로 사회공동체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아파트 단지만이 원인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홍윤주 건축가가 말하는 ‘우리가 잃어버린’ 길은 무엇일까. 목적지에 가장 효율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수단, 즉 ‘이동’의 선택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어린이 노동자 고양이 등 도시의 동료 시민과 만나서 인사하는 ‘접촉’의 길만을 말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양한 이동을 하면서 다양한 삶과 만나고, 길 양쪽의 공간들이 다양한 삶과 상업과 문화의 취향과 결합할 수 있는 연결 기회의 상실이자 이를 만끽하고 살아야 할 도시 삶의 상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 주거 형태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로부터 대량 청약과 분양권 전매를 통한 차익 실현과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공급이 시급했던 우리 사회의 표준 주거모델은 양적 확산을 지속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차별화와 고급화로 브랜드화가 시작되었다.

이때 아파트의 편의성과 함께 자산적 가치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입지였다. 입지는 근린 생활권과의 연결, 교육과의 연결, 직장과의 연결에서 시작되어 문화와의 연결, 자연과의 연결 등 시대와 세대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필요한 연결을 찾는다. 그리고 점점 확장되는 단지에서 카페 공원 문화시설 등 생활 편의시설을 자체적인 내부 연결로 해결하고, 입주자 규모에 기반한 강력한 수요력으로 단지 외부의 상업과 문화시설까지 강하게 빨아들이는 외부 확장력까지 작용하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가깝다 할지 블랙홀에 가깝다 할지 정의마저 내리기 힘들다. 그리고 이제 자본으로는 단지에 넣을 수 없는 한강과 바다 등 자연환경을 입지와 가장 강하게 연결해 사유화하려는 전략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과 함께 부산시 행정에 대해 시민이 비토하는 가장 큰 목소리 중 하나는 ‘일자리는 내보내고 아파트만 짓는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이기대에 건설될 아파트에 대한 난개발 논란이 크다. 해안 경관과 생태환경의 훼손과 조망권 독점 등 공공 이익 침해가 가장 우려된다. 건설사 특혜 논란도 국무위원의 위장전입처럼 이제 빠지면 섭섭할 단골 메뉴다. 아파트 특유의 폐쇄성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만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시민은 너무도 많이 학습되어 있다.

옛 부산항 컨테이너 항만이 이전하고 북항을 매립하고 철도기지창을 옮기는 등 지난 100년의 사회적 기능을 다한 천혜의 아름다운 부산의 땅이 다시 길을 찾고 있다. 물론 아파트를 지어야 사업성이 나온다는 의견도 백번 양보해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어떤 아파트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이상 조직이 우리 몸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영양분만을 빨아먹고 커지는 것을 무엇이라 지칭하는지 잘 알고 있다.

도시와 건축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우리 사회 아파트 단지의 사회적 문제와 도시 네트워크 연결성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공공이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에서 우선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50년간 이어진, 한국사회의 투기와 계급사회의 욕망이 그대로 응축된 아파트 단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에 1인 주거가 40%에 육박하고 있다. 주거에서 사회성을 찾지 않으면 모든 개인은 파편화되고 남는 것은 욕망과 배척과 혐오이다. 또 길을 잃을지 모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 김정은, 중대장대회 지도.. "군사 혁명 다그치자는 것"
  2. 2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모레까지 최대 120㎜ 이상
  3. 3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4. 4면세구역서 주운 담배 반출하다 걸린 직원, 징계 피해 퇴사 후 재입사
  5. 5한전, 사채 한도 19조 초과 위기에 '전기요금 인상론' 재개
  6. 6인천서 노루 사냥 엽총에 밭일하던 80대 부상... "앉아 있어 못 봤다"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7.8원… 전주보다 0.5원 ↓
  8. 8與, ‘혁명가 박정희’ 포럼에 “국힘, 역사 왜곡 정당이냐” 비판
  9. 9[속보] 추미애, ‘예산 전액 삭감’ 경기도 순직 소방관 추모행사 참석
  10. 10국힘 "與 신천지 개입설, 그토록 좋아하는 특검으로 밝히자"
  1. 1[속보] 김정은, 중대장대회 지도.. "군사 혁명 다그치자는 것"
  2. 2與, ‘혁명가 박정희’ 포럼에 “국힘, 역사 왜곡 정당이냐” 비판
  3. 3국힘 "與 신천지 개입설, 그토록 좋아하는 특검으로 밝히자"
  4. 4[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5. 5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6. 6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7. 7이 대통령, 최길수 특별감찰관 임명
  8. 8李대통령 지지율 소폭 상승해 40% 회복…부정평가는 50%
  9. 9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10. 10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1. 1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7.8원… 전주보다 0.5원 ↓
  3. 3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4. 4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5. 5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6. 6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7. 7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8. 8[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9. 9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10. 10"해양 위협하는 발전소 온배수, 5년간 바다에 3700억t 배출"
  1. 1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모레까지 최대 120㎜ 이상
  2. 2면세구역서 주운 담배 반출하다 걸린 직원, 징계 피해 퇴사 후 재입사
  3. 3한전, 사채 한도 19조 초과 위기에 '전기요금 인상론' 재개
  4. 4인천서 노루 사냥 엽총에 밭일하던 80대 부상... "앉아 있어 못 봤다"
  5. 5[속보] 추미애, ‘예산 전액 삭감’ 경기도 순직 소방관 추모행사 참석
  6. 6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7. 7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8. 8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9. 9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10. 10부캉이 머물던 북항서 기름 유출…8시간째 모습 안 보여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5. 5‘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6. 6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7. 7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8. 8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9. 9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10. 10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if, 손아섭
교육이라는 희망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기초의회 의정비 증액,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특별감찰관 부활, 임명보다 실질적 감찰이 중요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이불 킥’의 순간에 도움 될 심리학 지식 한 스푼
문화예술의 시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