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조선 시대 이래 서울(한양)에서, 서울이, 서울을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사람은 한양으로’, 이는 옛말이 아니라 현실이다. 유례 없는 수도권 일극체제의 기형 국가에서 이제 부산은 2위 도시라는 표현이 민망한, 3등 도시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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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준 부산시장이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각각 당선된 뒤 선거캠프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박 시장은 2021년에는 '내게 힘이 되는 시장'을, 2022년에는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을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국제신문 DB |
앞선 칼럼에서 수차례 강조한 바, 부산의 처지는 정치지형에서 비롯됐다고 다시 한 번 단언한다. 일당 독점 구도 아래 정당 내 공천 혈투만 있을 뿐, 정당 간 경쟁은 실종됐다. 수도권은 ‘다음은 없다’는 절박함 아래 예선이든 본선이든 정당 간 사생결단의 대결이 펼쳐진다. 모두가 수도권을 위한 정책을 부르짖으니 수도권은 윤택할 수밖에 없고, 인구는 더욱 몰린다. 영리한 표심과 그렇지 않은 표심이 오늘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결정적 차이를 불러왔다는 건 결코 논리적 비약이 아니다.
이러한 정치 지형의 산물이 바로 ‘부산시장’이다. 부산에서는 부산을 벗어난 정치적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이 전무했다. 재선 내지는 연임이 목표인 ‘동네 맹주’, 누군가는 ‘연산동 대장’ 수준이었다. 경쟁 없는 정치 지형과 정치적 미래 없는 부산시장이 3등 도시 부산을 만들었다.
하지만 천신만고, 천만다행으로 부산의 정치지형은 정당 간 경쟁을 엿볼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더불어민주당에게는 희망을, 국민의힘에는 긴장을 가져올 정도가 된 것이다. 여기에 부산시장 박형준의 등장으로 부산은 전례 없는 기회를 잡았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밑그림을 그린 당대의 전략가이자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유명 정치인으로, 부산을 넘어선 정치적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부산의 미래 운명을 좌우할 가덕도신공항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취임 일성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이끌고 김경수 당시 경남지사가 주도한 부울경 메가시티 논의에 적극 동참, ‘합리적 보수’의 면모를 보였다. 그런 기대감 속 박형준은 2022년 재선에 성공했고, 현 광역단체장 중 서울시장과 비견될 만한 정치적 위상으로 또 한 번 기대를 모았다.
어느덧 6년 차, 부산시장 박형준의 위상은 어떠한가. 졸렬하게 2030엑스포 유치 실패 따위를 논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부울경 메가시티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박형준은 2022년 경남지사와 울산시장의 비토 아래, 극한의 수도권 집중으로 신음하는 대한민국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전범으로 평가받던 부울경 메가시티(부울경 특별연합)를 부산경남울산이 스스로 걷어차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부산경남의 행정통합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이 목표로 내건 2026년에 이르렀다. 대전·충남, 광주·전남 심지어 대구·경북의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전을 넋놓고 구경하는 신세가 됐다. 이재명 정부는 통합 지방정부에 4년간 최대 20조 원을 파격적으로 지원한다. 당시 문재인 정부도 비록 중장기예산이지만 특별연합을 구성한 3개 시·도의 공동사업 70개에 30조 원 이상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하지만 더 기가 찰 대목은 행정통합 정국에서 박형준의 ‘실종’이다. “떡시루(제도 개선)가 아니라 떡(인센티브)을 주는 방식의 행정통합은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지방분권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그의 입장은 신년 벽두 몰아치는 행정통합 정국에서는 들리지도 않는 귓속말 수준이다. 주변에는 행정통합이 여권의 선거전략이라는 알량한 교언만 난무하니 통탄할 지경이다. 광역 지방정부 간 통합은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숙명이다. 이명박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모델’을 입안했고, 30년 전 시민운동가로서 부울경 통합을 가장 먼저 외쳤던 박형준이 모를 리 없다. 전국 광역단체장 중 행정통합 논의를 주도할 능력을 갖춘 인사가 박형준 말고 더 있나. 무엇을 고민하나.
한 번 더 상기하건대 부산의 정치적 지형이 달라졌다. 시간도 없다. 모든 것을 걸고 덤벼야 할 때, 그래야만 개인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부산시민도 정치력과 정치적 장래가 있는, 부산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그래서 전국의 주목을 받는 부산시장을 만날 때가 됐다. 부산시장의 위상이 곧 부산의 미래, 시민의 자존심이다. 어쩌면 박형준 개인을 소재로 숱한 칼럼을 써온 기자의 마지막 고언일지도 모른다.
송진영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