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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컬처 픽] AI를 도구로 길들이는 문화예술의 힘

박진희 미술평론가·더마루아트 대표

  • 박진희 미술평론가·더마루아트 대표
  •  |   입력 : 2026-01-22 18:59:13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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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등장한 AI의 활용은 너무나도 빠르게 우리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특히 한국은 AI 도입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며 전체 근로 연령 인구의 30%를 돌파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과 일상에서의 노력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며 우리의 삶의 형태를 편리한 지형으로 재편하고 있다. 따라서 이전의 수고로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매끄러운 편리함이 채워지고 있다. 특히 고도화된 알고리즘은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개인의 취향을 분석하고 제안하는 이른바 ‘취향 배달’의 시대를 열며 삶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편리해짐과 동시에 AI가 인간의 영역을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를 불안 속에 몰아넣는 결과도 초래했다. 기업은 더 이상 신입사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전문가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낮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고용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속 위태로운 중년의 초상이나, 해고와 실직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한 가장이 극단으로 치닫는 블랙코미디 서사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처럼, 급변하는 사회 시스템에서 불안한 현대인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국 편리함의 대가로 지불한 것은 다름 아닌 삶의 주도권 박탈이라는 예고인 것이다.

이처럼 기술 진보가 오히려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고 심리적 불안을 심화할 때, 예술은 시대의 결핍을 포착해 그 빈틈을 메우는 새로운 시도들을 실험한다. 가파른 기술사회 발전의 완벽함이 줄 수 없는 따뜻한 연대와 생생한 감각을 갈망하는 사회적 에너지는 이제 문화예술 창작의 문법 자체를 뒤바꾸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글로벌 미술계가 올해의 키워드로 ‘휴먼 터치(Human Touch)’를 꼽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AI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빈틈없고 매끄러운 이미지에 지친 대중이, 역설적으로 예술가의 거친 붓질과 투박한 흙의 질감처럼 ‘실수가 허용된 인간의 흔적’에 다시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감각의 확장’에 대한 갈망은 미술 현장 밖의 풍경에서도 증명된다. 한국 공연 문화와 스포츠 경기장 특징 중에는 거대한 인파가 한목소리를 뿜어내는 ‘떼창’이 있다. 수만 명이 하나의 진동으로 공명하며 얻는 ‘집단적 황홀경’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며 타인과 정서적으로 동기화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문화 체험형 지역 축제 참여도가 높아져 방문객 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디지털 과잉 시대에 우리가 역으로 ‘서로의 체온과 유대’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화예술은 AI 시대에 우리 안의 ‘살아있는 감각’을 회복하기를 우리에게 제안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 화면 속 매끄러운 평면으로 치환될수록, 인간은 손에 잡히는 물건의 느낌, 즉 물성과 감각 경험을 더 갈망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AI 시대에 ‘예술 교육’이 더 중요해지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제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거나 기술을 연마하는 데 있지 않다. 특히 미술관의 경우,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예술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마음의 우울을 걷어내고 인지 능력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사회적 처방’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AI가 모든 정답을 찾아주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이 설계한 매끄럽고 프로그램화되는 세계에서 나만의 시선을 지켜내는 비판적 감각이다. 데이터 밖의 세상을 상상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읽어내는 힘은 예술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문화예술이 대처해야 할 방향은 인공지능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의 ‘물리적 실존’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편안한 안식이 아니다. 오히려 잠든 감각을 일깨우는 예술의 날카로운 질문이다. 고요한 미술관 전시실의 공기 속에서 작품과 직접 대면하는 날카롭고 정적인 경험은 물론, 공연장의 관객들이 하나의 진동으로 공명하며 공감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AI와 구별되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시간이다.

올 한 해, 다채로운 문화예술 현장 곳곳에서 독자들은 화면 속 이미지가 아닌 생생한 실재의 경이로움과 타인과의 깊은 유대를 마음껏 만끽하기를 소망한다.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각을 확장하거나 정서적 위안을 얻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거대한 기술의 파도 속에서 나만의 중심을 잡고 AI 시대를 현명하게 유영하는 내면의 근육을 키우는 수련의 과정이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예술을 통해 고유한 통찰과 감성을 단단하게 다질 때, AI는 비로소 우리의 자리를 위협하는 공포가 아닌 인간의 창의성을 무한히 확장해 주는 도구로 길들여질 수 있다.

데이터 밖의 세상을 상상하고 생생한 실재를 경험하는 문화예술은 우리 안의 ‘살아있는 감각’을 깨우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이러한 예술적 감각은 우리가 기술에 잠식당하지 않고, AI 시대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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