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로마제국 시대, 유대 지방에서 예수라는 한 젊은이의 십자가 처형이 집행됐다. 그는 유대 사회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로 인식됐으며, 유대 최고재판기구인 산헤드린 공회는 율법에 근거해 신성모독죄로 사형 선고를 내렸다. 사형 집행 권한은 로마 총독에게 있으므로, 종교적 판단은 정치적 죄목(반란 선동죄)으로 변형돼 빌라도 총독에게 제출됐다. 증거는 불충분했고 증인 진술은 일관되지 않아, 그는 예수의 무죄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기득권 세력 제사장 그룹의 사두개인과 율법주의 바리새인의 고발, 군중의 압박과 권력 안정 등 자신의 정치적 이득이 맞물리며 십자가 처형을 승인했다. 빌라도가 유월절을 맞아 가이사 황제의 선의로 죄수 한 명을 풀어준다고 하자, 재판정에 모인 유대인들은 ‘사랑과 공의’를 설교한 예수가 아니라 살인죄를 범한 바라바를 선택했다. 사후 예수의 가르침이 민중에게 확산되자 산헤드린 공회와 로마 총독은 모두 ‘법’적 근거와 민중 의지를 반영한 판결이었다고 변명했다.

이 역사적 사건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질문한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가? 산헤드린 공회와 로마 총독은 ‘법’을 근거로 판결했다지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정의가 아니라 권력 안정과 기존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절차가 존재했으나 정의는 부재했고, 중립을 가장한 침묵은 결국 폭력에 대한 동조로 귀결됐다. 예수의 십자가는 신앙의 상징 이전에,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이 ‘법’을 절대화해 수단으로 사용했을 때, 무고한 사람을 제거하는 장치가 되는 최악의 결과를 보여줬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사법부는 법을 통한 정의 실현을 위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좌절시킨 국회 반민특위 해체 사건(1949),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한 조봉암 간첩조작·사법살인 사건(1959,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확정), 반국가 단체로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1974, 2009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 북한 연계 지하조직으로 조작해 8명을 사형시킨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5, 2007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 부림 사건(1981)·학림 사건(1981) 등 공안 조작 사건이 시민 저항으로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난무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고문과 조작을 통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과 일상을 앗아갔다. 사법부는 독재·권위주의 정권에 순응해 고문·조작한 증거를 채택하고 법의 이름으로 정치권력에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법이 공정하지 않다” “판결이 정치적이다” “수사는 편향됐다” 이런 사법 불신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갔다. 정치권력에 굴종한 사법권력은 양심 인권 공정 등 정의와 멀어진 판결을 통해 사법제도의 효능감을 무너뜨렸다. 시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광장에서 국민주권을 위해, 재판정에서 정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외치며 권력에 저항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 사망사건은 범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망사건으로 전국에서 분노가 확산하자, 정치권력은 6·29선언을 통해 국민적 요구를 수용했다. 이런 피눈물로 쟁취한 민주화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한 국민주권의 대통령 직선제, 삼권분립의 대의민주주의, 법치주의와 자유경제 질서를 규정한 현재의 헌법으로 귀결됐다. 민주화 이후 사법제도는 훨씬 정교해졌고, 인권의 기준도 달라졌다. 그러나 권력이 정의를 압도할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 즉 엘리트 중심의 사법구조는 시민의 권리 보호보다 자신들의 특권 창출에 기여해 온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폭력적 공범 단계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책임지는 민주적 기관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지난해 계엄 선포 당시 시민은 위헌을 외치며 국회를 지키기 위해 광장에서 온몸을 던져 계엄군에 대항했다. 시민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의원들은 계엄 해제를 의결해 입법부를 지켜냈다. 반면 사법부는 계엄포고령으로 사법권이 정지되는 상황에서도 침묵했다. 이런 사법부가 내란 관련 재판으로 신뢰를 잃고 ‘사법개혁’이 이슈화되자 ‘사법독립’을 위협하는 위헌적 법 개정이라고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에 사법역사는 이렇게 증언한다. 사법부가 권력 안정과 특권의 도구가 될 때, 법은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절차만 남고 정의가 사라질 때,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법관 양심과 제도의 견제 장치가 붕괴될 때, 사법은 폭력의 도구가 된다.

사법은 형벌을 집행하는 힘이 아니라, 권력 제어의 마지막 장치여야 한다. 예수 십자가가 오늘날까지 상징성을 지닌 이유는, 법이 정의를 잃을 때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오래된 경고를 새기며 다시 묻는다. 사법부는 누굴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우리 사회가 답하지 못하면, 사법부의 비굴한 역사는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