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은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부산의 노면은 울퉁불퉁하다. 그래서 노면의 요철에 따라 버스는 항상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원도심에서는 더욱 소리가 크다. 현대문명 중 나이 많은 축에 속하는 버스가 원도심과 만나 만들어내는 화음에 여러 감정이 든다. 소리를 자세히 들어본다. 노면 요철에 따라 작은 금속 기계 부품들이 서로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무거운 기계 뭉치가 차체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덜컹거리기도 한다. 무게와 크기가 다른 여러 부품이 연결되어 조립된 기계가 환경에 따라 내는 소음은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 소리가 불편한 사람도 있고, 그 소리로 오히려 가벼운 낮잠에 들거나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는 사람도 있다.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면 기계는 마찰을 일으킨다. 마찰이 끊임없이 일어나 모난 곳이 닳아 없어지면 그 소리가 없어지기도 하겠지만, 톱니와 같이 부품과 부품이 서로 맞물려 부딪히지 않는다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윤활제를 쓴다.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덜컹거린다. 삐걱거린다. 사회에서는 약자가 ‘쿠션어’라고 하는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마찰을 줄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이 있다. 북송 설화집 ‘태평광기’에서 “하늘의 옷은 원래 바늘이나 실로 꿰매는 것이 아니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조금이라도 덧대고 기운 자국이 없는 완전한 아름다움이다. 만드는 과정은 없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명령하여 창조한 느낌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창조물도 과연 그러할까. 부산이라는 도시를 보더라도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 체계 위에 조선인들이 삶을 덧대어 꿰매었고, 그 위에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또 다른 삶과 문화로 덧대어 꿰매었고, 경제성장기 우리의 삶이 덧대어 꿰매어진 모습이다. 사람의 도시가 수많은 삶으로 덧대고 꿰매어졌으니 인도만봉(人都萬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다.
그래서 도시와 건축의 연구자는 도시의 꿰매어진 모습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꿰매고 덧대는 과정에서 창조자가 의도한 이상적인 모습이 훼손되었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삶의 과정이므로 가치를 보존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역만의, 부산만의 가치가 나타나고, 뉴욕 도쿄 서울과 다른 부산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이 꿰맨 자국은 무엇일까. 꿰매었다는 것은 하나의 조직이 또 하나의 조직과 연결된 흔적이다. 도시로 본다면 삶과 또 하나의 삶, 삶과 문화, 삶과 산업이 서로 관계를 맺은 흔적이다. 그 사이 골목과 길, 건물에 약간의 틈을 낸 공터와 쌈지공원 이런 것들이 도시를 꿰맨, 즉 도시 조직 경계의 흔적이고, 마찰을 줄이기 위해 삶의 지혜를 모아 마련한 완충공간이다. 그리고 이 꿰매어진 마찰과 완충의 공간에서 어릴 적 처음 사회를 만나고, 함께 놀이를 하고, 평상을 놓고 교류하고, 노상의 문화와 상업이 펼쳐지는 것이다. 경계의 틈에서 생겨나는 연결의 문화이다.
그래서 이 꿰매어지고 덧대는 과정에서 비록 삐걱거리더라도 서로 부딪히고 이해하고 맞추어가는 지혜가 서민들의 삶의 형태로 구현된다고 믿는 건축가들이 있다.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오래된 주택들이 만든 마을의 골목을 살려 새로운 독서 커뮤니티 공간을 제안했으며, ‘연희동 희희희’라는 주택은 자녀를 위한 공간을 골목의 형태로 만들었다. 얼마 전 끝이 난 구가건축의 전시 ‘fiction non fiction’에서는 25년간의 답사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진 동네에서 삶과 건축의 교차점을 찾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발명품인 아파트 단지는 천의무봉을 꿈꾸는 주거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입주자 외 통행 제한, 입주자 결혼정보회사, 입주민 전용 반려견 목줄 등 외부 시민과의 접촉과 마찰을 끊임없이 차단하려 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내부의 커넥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화려한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아파트 계급의 이름은 얼마나 길어질까. 이 단지 문화가 지금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건축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이 든다.
분명 여러 필지가 합해진 거대 아파트 단지는 다시는 나누어질 수 없을 것이다. 주위 생태계와 단절하고 천의무봉의 세상을 꿈꾸는 대규모 개발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자동차가 원활히 드나들어야 하니 천의무봉의 단지 주변은 넓은 도로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도시생태계의 다양한 이웃들과 우연하지만 빈번하고, 때로는 무의미해 보이는 작은 연결을 만들어 낸 골목과 길은 도태될 것이다. 그 경계의 공간이 사회적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 각자도생으로 바뀐 지가 언젠데 왜 사회적 공간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성은 당장 불편하고 불필요하고 비경제적으로 느끼더라도 지속해서 연습해야 조금씩 변한다.
커넥션과 네트워크는 모두 연결을 이야기한다. 욕망의 연결과 다양성의 연결에 다른 영어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 새삼 한국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