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보니까 훨씬 좋습니다. 정말 멋진 그림이군요.” 휑하니 하얀 벽면에 그림을 걸고 마침내 기쁨의 감탄사가 나왔다. 주말이었음에도 교장 선생님부터 행정실 선생님들까지 모두 나와서 작품이 설치되는 과정을 함께 관람(?)했다. 그렇다. 전시장에서 이미 벽면에 잘 준비된 그림들만 아주 가끔 보았을 것이다. 작품이 어떻게 포장돼 풀리고 벽에 설치되는지 선생님들에겐 아마 처음 보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이 작은 프로젝트는 지역의 한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의견이 모여 시작됐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선물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담당 선생님이 정해졌고, 교장 선생님의 결정까지 일사천리로 확정됐다.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그림을 빌려올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에 소개된 소수의 그림 대여 사이트들은 지역까지 커버하지 못하였고, 지역의 갤러리들은 그림을 판매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라 작품 대여는 반기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오래전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에서 작품 대여프로그램을 진행했었던 필자에게 연락이 닿아 마침내 휑한 벽면을 색의 향연으로 채울 수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문화 사업을 위해 여유로운 예산과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작가와 기획자는 실리를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주는 선물 같은 그림’이라는 명분은 우리에게 참으로 근사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하게 했다. 참여하게 된 작가는 작품의 크기와 수량에 관계없이 학교 구성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직접 선택하도록 배려했고 기획자인 필자는 작가와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핑퐁 치듯 경쾌하게 서로를 조율했다. 학교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았고 망망하기만 하던 하얀 벽면에 작품 설치를 시뮬레이션해 보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의 작은 허세와 사치라면 프린트된 작품이 아닌 원작일 것,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일 것,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 내용일 것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원작을 고집한 이유는 단순한 인테리어 용도로 그림을 설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누구나 아는 아주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프린트해서 교육용으로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예산과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원작이 주는 무한 에너지의 힘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프린트된 작품 앞에서는 간혹 작품을 가볍게 보고 실례를 범하기도 한다. 원작을 설치하면서 작품의 안전을 위해 예쁘고 단아한 디자인의 경고 문구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교장 선생님은 매우 직관적이며 다소 강압적으로 보이는 빨간 경고성 안전 문구인 ‘손대지 마시오’를 선택하셨다. 학생들에게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교육하기 위해서 확실한 디자인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 공공의 장소에서 작품 감상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완성되는 현장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손대지 마시오’ 스티커는 작품을 감상하는 구성원 모두가 원작의 에너지를 공감하며 갖게 되는 기본예절이 되는 것이지 작품에 손댈 것이라는 전제하에 강압이나 경고는 아니었다. 게다가 원작의 작가는 우리 동네에서 작업 활동을 하고 있으니, 작가를 만나볼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작가 또한 작품을 감상하며 평가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의견을 직접 현장에서 들어 볼 수도 있다.
예술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문화예술인, 그리고 많은 아티스트들은 예술적 허세, 혹은 ‘예술병’이라고 불리는 고질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이 예술적 허세의 가장 큰 문제는 관람객을 작품에서 배제하고 설득하지 못한 채, 관람객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특히 어떠한 것도 작품으로 가능하게 된 동시대 미술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길 위에 펼쳐놓고서는 ‘밟지 마시오’라고 하고, 쓰레기인지 작품인지 구별하기 어려운데 ‘손대지 마시오’라고 한다. 난해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관람객이 공부가 부족한 것이고 원래 대중적이지 않은 것이 작품의 철학이니 정답은 없다. 그리고 관람객의 질문도 없다. 그림을 실제로 보니 정말 아름답다는 선생님과 함께 ‘손대지 마시오’ 스티커를 붙이면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본다.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자유롭고 편하게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는 것, 새해부터는 이런 예술적 태도가 기본이 되어 누구나 예술을 쉽게 즐겼으면 좋겠다.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