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는 의사와 환자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비대면 진료를 말하는데, 약 30년 전부터 이미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조명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흐름을 적극 수용한 김대중 정부의 노력으로 2002년 3월 30일 의료법을 개정해서 ‘의사-의료인 간 원격자문’ 유형의 원격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본격적 원격의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1단계 개혁에 불과했다. 이후 우리 정부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2단계 개혁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그 과정은 정치·사회적 갈등과 무산의 연속이었다.
제18대 국회 때인 2010년 4월, 이명박 정부는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서비스 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가 반대했고, 의료민영화를 우려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민주당)도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결국 이 법안은 폐기되었다. 박근혜 정부도 제19대와 제20대 국회 때 원격의료를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연속해서 제출했지만, 이것들 역시 의료계와 야권의 반대로 폐기되었다. 상황은 제21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원격의료의 개념을 “모든 의료분야의 전문가들이 떨어진 장소에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질병 또는 부상의 예방·진단·치료, 의료공급자들에 대한 꾸준한 교육, 그리고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유용한 정보와 의료서비스를 교환하고 공급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원격의료를 적극 도입했다. 경험적 연구에 의하면, 원격의료는 의료 이용의 접근성과 형평성 향상, 지리적 사각지대 해소,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 지역사회의 건강관리 능력 향상, 이동 경비와 시간 절약, 의료 이용의 적시성 증가, 입원·응급의료 회피 가능성 증대 등의 유익한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감염 방지책의 일환으로 시범사업 형태의 전국적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2020년 2월 처음 시작했고, 지금까지 5년 넘게 시행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비대면 진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 계기가 마련되었다. 11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인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격의료의 명칭을 ‘비대면 진료’로 정했다. 둘째, 희귀질환자, 제1형 당뇨병 환자, 수술 후 경과 관찰이 필요한 환자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동네의원이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하도록 했다. 셋째, 정부가 비대면 진료 중개 업체에 대한 법적 규제와 관리를 강화하도록 했다. 넷째, 준비를 거쳐 비대면 진료를 1년 후에 시행하도록 했다.
의료계와 시민사회·야권이 그동안 비대면 진료의 도입을 반대했던 주요 이유는 정확성·안전성의 미흡, 대형 병원 환자 쏠림, 그리고 의료민영화였다. 대형 병원 환자 쏠림과 의료민영화 우려는 지난 5년 간의 시범사업 과정에서 대형 병원이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없도록(동네의원만 허용) 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남는 문제는 비대면 진료의 정확성·안전성에 대한 우려다. 그런데, 만약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의사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환자의 건강·질병 상태를 평소에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면, 초진이든 재진이든 비대면 화상 진료에 대한 이런 우려는 거의 없어진다. 그래서 비대면 진료의 관건은 바로 주치의제도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 고속도로 덕분에 정보통신기술의 활용 측면에서 다른 나라에 크게 앞섰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에서는 수년이나 뒤처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대부분의 선진국에 있는 주치의제도가 우리나라에는 없기 때문이다. 유럽 선진국들은 주치의제도의 기반 위에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보건의료의 성과 향상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 측면에서도 크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원격의료를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동안 주치의제도가 없는 무질서하고 비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원격의료의 도입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 비용을 치렀고, 과학기술의 활용에서도 뒤처지고 말았다.
올해 10월부터 제주도에서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시작되었고, 의료법 개정으로 1년 후부터 비대면 진료 시대가 열린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주치의제도를 공식적으로 전국에 도입하는 것이 정답이다. 게다가 주치의제도는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주치의 기반의 지역사회 보건의료가 발전하면 입원과 집중 치료 중심에서 건강증진과 예방 중심으로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주치의 중심의 지역 완결형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의료 제공의 효과·효율성 제고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도 유리하다. 나아가 주치의제도의 비대면 진료 체계가 작동하면 디지털 의료에 인공지능을 탑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미래 보건의료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