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이 국무회의 의결(9월 2일)과 6개월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에 시행된다.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사용자 개념의 확장이다. 실질적으로 지휘·감독을 행사하고 있는 원청에게도 교섭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이 도입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노동권의 외곽’에 방치해 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이는 미국의 ‘공동 고용’ 개념이나 유럽연합의 ‘공급망 인권 실사’ 기준과도 궤를 같이 하는 입법이다. 한때 한국에 본사를 둔 동남아 하청공장에서 벌어진 열악한 노동환경도, 본사의 공급망 관리 소홀이 빚은 문제였다. 이런 여러 사정에 비춰보더라도, 원청 책임을 국내법으로 명문화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과 부합한다.
법이 통과됐을 때 노사단체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경영계는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확실히 공급망이 수직적인 대기업일수록 부담은 늘어날 것이다. 파업 빈발로 인한 직접 생산 손실은 물론 납기 지연 같은 손실이 발생할 우려, 인건비 부담, 외국인 투자 감소, 심지어 국내 기업의 해외 탈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동계는 환영 일색이지만 역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봐야 한다. 법은 바뀌었지만, 하청노동자들이 실제로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조직률이 낮고, 법률적 조력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법이 무력화될 위험도 크다. 또 뒤늦게 하청노동자의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로 떠넘겨 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노동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기도 하다. 하청노동의 성격에 따라 자동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 이는 일자리의 축소를 의미한다.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란봉투법이 만들 새로운 질서를 그 취지에 합당하게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노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원·하청 관계의 재정립이다.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원·하청 간 관계를 단순 도급 계약이 아닌 공정한 동반자 관계로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청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원청기업도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에 심각하게 부상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 특히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있는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일자리 문제는 중소·중견기업이 전체 고용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의 질’은 대기업 정규직과는 명백히 다르다. 소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다. 제조업 건설업 물류·유통업 등 하청구조가 뿌리 깊은 산업에서 그 간극은 더욱 크다.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이들의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가 되도록 생태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의 작업 지시와 생산 일정, 품질 기준에 따라 움직이지만,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협상할 법적 권한은 제한적이었다. 이 구조 속에서 임금, 근로시간, 산업안전 문제는 원청과의 법적 거리만큼 해결이 어려웠다. 하청 일자리의 질을 개선해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서 ‘실질적 사용자’와의 협상이 보장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정 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던 노란봉투법. 법 제정 이후에는 재계를 중심으로 유예기간을 늘리자는 압력도 만만치 않다. 이런 주장은 이 법을 노사관계의 시각에서만 본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면이 있다. 물론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원청으로서는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의 관행을 깨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계기는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원·하청이 상생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하청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노란봉투법을 그 여정의 첫 단추로 보고, 정부·기업·노동계 모두 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
노란봉투법이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될지 아니면 원·하청이 상생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로의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전적으로 주체의 협력 여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