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부산이 세계디자인기구가 지정하는 ‘2028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되었다.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부산시는 ‘모두를 포용하는 도시,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을 주제로, 시민참여 기반의 서비스디자인 모델을 제안했다. 도시디자인(Urban Design)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세계디자인수도는 도시디자인을 통해 미래를 선도하려는 도시에 부여되는 하나의 명예이자 책임이다. 지금까지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도시들-토리노, 서울, 헬싱키, 케이프타운, 타이베이, 멕시코시티, 릴, 발렌시아, 샌디에이고와 티후아나, 프랑크푸르트-이 주창한 핵심 키워드를 살펴보면, 협업 혁신 적응 변화 참여로 요약된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 사회혁신, 불평등 해소, 경제적 변화 등 다소 무거운 주제까지 포괄한다. 이는 세계디자인수도의 핵심이 표피가 아닌, 사람 중심의 의식 전환에 있다는 뜻이다. 이 생각에 이르니,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부산의 고민이 보다 깊고 넓어져야 할 것 같다. 일단 시각적인 즐거움을 다루는 디자인보다는 무거워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뭔지 모를 도시의 본질을 디자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 아닌 질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2028 세계디자인수도 현장실사에서 심사위원단은 F1963, 봉산베리베리굿, 도모헌 등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이들 공간은 최근 전국적 주목을 받는 민관이 협력해 만들어낸 빛나는 성과물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러한 장소들이 300만 대도시 부산의 측면에서, 전체 속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다시 면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도시디자인의 진정한 힘이 드러날 것이다. 부산의 과제는 바로 이 ‘점에서 선과 면으로’ 이어지는 확장의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는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 디자인을 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를 나쁘게 만드는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부분 공공정책은 전자에 집중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디자인’을 열심히 추진해도, 동시에 도시의 격을 떨어뜨리게 하고 혼잡하게 만드는 ‘반(反)도시적 디자인’이 양산된다면 그 효과는 상쇄될 수밖에 없다. 결국, 도시디자인의 진정한 과제는 ‘좋은 디자인을 더하는 것’과 함께 ‘나쁜 디자인을 멈추거나 절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시의 일상 속에서 반 도시적인 요소들이 지속되는 한, 세계디자인수도로서의 부산의 노력 또한 온전히 평가받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득 부산이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중국 항저우를 경쟁에서 물리쳤다니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추측해 본다. 첫째, “실사 대상의 사례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바다와 산들이 보기 좋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 추측이 맞다면, 부산의 디자인은 자연을 보전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부산다움’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탈산업화 시대를 맞은 오래된 항구, 그리고 힘을 잃어가는 주변 동네들의 모습이 되레 돋보이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쇠퇴지역 속에 창의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지역민들을 배려하는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피란수도 시절을 거치며 형성된 부산의 거친 기억들이 역설적으로 심사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기억을 디자인하는 도시’로서, 역사를 존중하고 상처를 품은 공간들의 품격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디자인을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은 “현장을 누비는 시민의 생동감이 결정적인 선택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의 디자인은 시민이 행복한 디자인과 모두에게 공평한 디자인을 지향해야 한다. 세계디자인수도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디자인 민주주의(Design Democracy)’임을 생각하면, 이는 부산이 가장 주목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부산의 세계디자인수도 선정은 지금까지 잘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이 경쟁 도시보다 컸기 때문인 것 같다.
도시디자인과 결부된 부산의 잠재력, 과연 무엇일까? 아마 그 답을 올바르게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세계디자인수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싶다. 2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이 주어졌으니, 사업단위로 서둘러 추진하려는 유혹이 클 것이다. 그러나 도시디자인은 개별 프로젝트의 집합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디자인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2년은 부산의 근본적인 체질과 태도를 서서히, 그리고 깊이 변화시켜가는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도시디자인이 시민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진짜 좋은 도시로 부산을 변화시켜 줄 것이다.
다자인을 하면 할수록 부산의 실체가 더욱 뚜렷해지고, 부산의 가장 큰 자산인 자연과 근대역사가 더욱 빛나게 되는, 그런 도시디자인을 통해 부산이 진정한 세계디자인수도로 거듭나길 시민의 한 사람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