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일대 ‘경관지구’가 해제된다. 부산시는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 정기총회에서 ‘유엔기념공원 주변 경관지구 관리 방안’이 조건부로 통과됐다고 28일 밝혔다. 이는 규제 완화를 넘어 도시재생의 혁신적 전환 계기임을 의미한다. 세계평화 상징인 유엔공원의 경건함을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는 국제적 약속 아래 50여 년간 이 지역엔 엄격한 고도 제한과 건축 규제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 경관지구가 조건부 해제됨으로써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 기능 회복을 위한 실질적 기반이 마련됐다. 세계 유일의 유엔 공식 묘지라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다양한 글로벌 교류와 문화 창조로 확장할 전략이 필요하다.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턴투워드 행사에서 블랙이글스가 상징구역 위로 추모비행을 하고 있다. 턴투워드 부산 국제 추모의 날 행사는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부터 한국전쟁 유엔 참전용사들을 기리며 1분간 묵념한다. 국제신문DB

유엔공원은 14개국 참전용사 2000여 명이 잠든 세계사 터전이다. 이 땅은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과 세계평화, 희생정신을 기리는 국제적 성지다. 부산시는 상징성이라는 자산을 기반 삼아 개발과 보존 논리가 충돌하지 않는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을 구현해야 한다. 일대 전체를 일률적으로 완화하지 않고, 지형과 용도, 경관 맥락을 세밀히 구분해 구역별로 건축물 높이와 규모, 외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높은 지형에는 여전히 고도 제한을 유지하고, 저지대 가까운 곳은 높이 30m로 규제를 완화한다. 나아가 건축물 용도·소재·색채 등 외관까지 규정하는 지구단위계획이 마련된다. 이 과정에 국제관리위원회와 심도 있는 협의와 승인이 전제조건이다.

주목할 대목은 유엔공원 주변에 프랑스문화원(해운대구)을 비롯한 각국 문화기관을 유치해 이곳을 ‘글로벌 문화클러스터’로 발전시키는 구상이다. 인도문화원은 이미 유엔공원 가까이 있다. 부산시는 유엔기념공원과 인접 복합문화공간의 연계, 평화공원 활성화, 참전국 정원 설치, 유엔글로벌평화센터 건립 등 복합 사업을 추진해 왔다. 경관지구 해제 이후 건축 고도 제한이 대폭 완화되면 세계 22개 참전국 등 다양한 국가의 전통·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문화원 거리’ 사업 등을 실현할 수 있다. 내년 시작하는 도시관리계획 입안 용역에 이 같은 내용을 넣어야 한다.

그 결과 유엔공원 일대는 평화와 희생, 문화 교류, 도시 발전이 어우러진 ‘세계유산형 도시재생’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도시 기념성과 현대적 생활 공간이 양립하는 창의적 모델을 통해 부산은 역사와 미래를 연결하는 도시재생의 국제적 패러다임을 선도할 수 있다. 또 내년 부산에서 열릴 제50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 준비에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 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국제관리위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유산 가치와 주거환경 개선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결국 대규모 아파트 개발을 위한 선조처였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된다. 국제적 협력과 시민 참여 속에 문화와 존엄, 혁신이 살아 숨 쉬는 ‘유엔공원 도시재생 모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