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부동산 대출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번져 대기업조차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미국의 자동차 ‘빅3’도 예외가 아니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CEO는 구제금융 신청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던 기자들이 깜짝 놀랐다. 재정난으로 정부에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호화 전용 제트기를 타고 온 것이다. 성공을 거뒀을 때 사람의 뇌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도파민이 엄청나게 분비된다고 한다. 이것이 주변 상황이나 시선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헨리 키신저가 ‘최고 최음제’라 표현했던 바로 그 권력의 속성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휴대전화 메시지를 쓰다 언론사 카메라에 딱 걸렸다. 이때 드러난 딸 결혼식 축의금 내역에 100만 원짜리가 수두룩했다. 국정감사 기간 국회에서 자녀 결혼식을 올린 것도, 그 많은 축의금을 받은 것도 놀랍지만 정작 기가 막힌 대목은 따로 있다. 국회의원의 휴대전화 잔혹사가 그동안 숱하게 반복됐는데도 또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본회의장 1층엔 의원 좌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돼 있고, 기자는 2층에서 취재한다. 의원석 맨 뒷줄은 기자석과 거리가 10m 정도다. 기자가 최신 망원렌즈로 의원 개개인을 지켜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차명 주식거래, 인사 청탁, 동료 험담 등을 하다 들켜 곤욕을 치른 의원이 하나 둘 아니다. 카메라 포커스를 일부러 유도해 ‘흑심’을 이루려 한다는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녀 결혼식 축의금 내역’이 노출을 의도할 사안은 아니다. 최 의원은 사진기자와 비교적 가까운, 뒤에서 세번째 줄에 앉는다. 진짜 급했거나, 누가 봐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쓰레기를 교실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선생님이 두려워서다. 내면의 도덕적 기준 높낮이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욕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변 의원이 지탄받는 모습을 지겹게 보고도 똑같이 행한다면, 가장 초보 단계의 윤리의식 발현조차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주위엔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보좌관, 무슨 짓을 해도 박수치는 골수 지지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는 동료 의원들 뿐이다.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권력 중독이 이렇게 무섭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