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SNS에 ‘2025년까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라던 긴 추석 연휴가 끝이 났다. 개미의 세계를 관찰하듯 시야를 훌쩍 위로 당겨 우리의 세계를 내려다보자. 전국 곳곳에 떨어져 있던 한국인들은 열차를 타고 자가용을 몰고 긴 시간을 달려 고향으로 이동한다. 현재 살던 곳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장소에 접속하는 것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회로와 같이 이동 트래픽이 붉은빛을 내며 급증한다. 그리고 새로운 접속이 이루어진 고향에서도, 오랜만에 자녀들과 박물관이나 관광명소를 찾는 작은 이동과 접속이 생긴다. 물론 해외로 이동하여 어느 아름다운 도시에 접속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평소 우리는 집이라는 거주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여 직장을 가고 문화공간을 찾고 사람을 만나는 분리와 이동과 접속을 되풀이한다. 이로 인해 많은 접속이 생기는 곳은 인간 개체가 내뿜는 활력과 경제 에너지로 인해 활성화된다. 이러한 전 지구 단위, 아니면 도시 단위의 거대한 네트워크에서는 항상 분리와 접속이 이루어지고 전류가 흐르듯 인간과 자본과 문화가 흘러 들어간다. 아마 거시적인 이미지화 연구가 가능하다면 뇌의 뉴런 신호처럼 반짝반짝 빛들의 움직임으로 그 연결과 활성화 과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거대 네트워크를 계속 확대해보자. 일반적인 네트워크와 같이, 북두칠성의 별이 선으로 연결되듯, 선의 끝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점들도 확대하면 작은 점과 작은 연결의 집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뇌의 신경망이나 핏줄과 같이 끊임없이 분화·확장되는 프랙탈(fractal)의 모습이다. 멀리서 보면 고향이 거대한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점을 확대하니 본가와 근처 바닷가와 옛날 추억이 있던 골목과 마을회관 앞 나무로 끝없이 확장된다.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가 점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 네트워크가 북두칠성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 생각하며 현미경을 들이댄 관찰자는 아마 혼란이 생길지도 모른다.
도시의 입장에서 좋은 공간은 그러한 것 같다.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퐁피두 미술관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사랑하는 미술관의 층위는 다양하다. 유명한 작품을 소장하여 몇백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세계적인’ 미술관도 있어야 하지만, 동네를 걷다가 만나는, 작은 주택을 고쳐 만든 갤러리에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미술관은 시민은 물론 관광객과 경제와 잘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재해석한 지역 작가의 작품은 또 하나의 네트워크를 품는다. 그림 속에서 다시 세상을 만나고 그 세상과 만나는 현대 인간의 군상과 무한히 연결되는 것이다. 작은 미술관이 만들어진 주택과 작품 자체가 이미 과거를 거쳐 현재에 다다른 지역과 시간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네트워크를 이루는 점들은 북극성처럼 큰 것이 빛나 보인다. 그 크기를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중심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튼튼하게 잘 연결되어야 한다. 연결성이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확장성(매개성)이다. 부산시의 역할은 좋은 점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화려하고 큰 점은 많은 돈이 소요되기 때문에 중심성은 물론 연결성과 확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강한 네트워크는 사람을 모을 뿐만 아니라 자석처럼, 민간에 의한 또 다른 끝이 없는 무수한 작은 네트워크를 생성하게 된다. 그것이 정책의 효과이고 세금의 효과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움직이고 돈 쓸 곳 많은 이 거대 도시 부산에서는, 그래서 도시 전체의 네트워크를 바라보고 건강한 점과 연결을 만드는 도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도시 삶에서 연결은 시민의 중요한 문화복지이다. 역세권은 교통에 의한 물리적 연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슬세권, 슬리퍼 차림과 같은 편한 복장으로 카페나 상점, 도서관 같은 편의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은 문화적 연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과 사회적 연결도 이루어지게 된다. 서울 단칸방에 살아도 부산을 떠나는 것은, 물론 일자리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무한한 사회적·문화적 연결이 가능한 곳을 원하기 때문이다. 21세기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이미 지역 중심의 전통적 네트워크는 축소되고, 사회적·문화적 연결이 이루어지는, 네트워크의 허브와 같은 도시 어느 방 한 칸에서 무한히 확장하는 우주를 품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연결은 신체적 능력과 경제력에 비례한다. 건강한 사람은 긴 네트워크의 경로를 이동하더라도 좋은 공간에 쉽게 접속한다. 물론 경제력에 따라 접근은 하더라도 접속할 수 있는 공간은 차이가 있다. 이는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세대와 노약자들의 연결성을 소홀히 하는 것은 곧 사회문화적 환경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경제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붕괴되는 것이 공공성이다. 공공성은 큰 건물을 짓는 것보다 우선 사람과 사회, 문화를 잘 연결하는 것이다. 연결이 끊어지면 사회 약자부터 파편화가 진행될 것이다. 그래서 연결은 마지막까지 함께 지켜야 하는 도시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