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차등전기료 시행을 내년으로 공식 연기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4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수급 여건, 송전 거리, 비용 등을 반영한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그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제시했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특별법에 따라 올 상반기 중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나 하반기로 연기했고, 내년으로 다시 미룬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행’이 아니라 ‘도입 방안 마련’이어서 추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부산 금정구 선동 일원에 설치된 송전탑 전경. 정부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올해 중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가 최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시기를 내년 이후로 다시 미뤘다. 국제신문 DB

차등 전기요금제가 시행되려면 정교한 설계가 필요한 건 맞다. 같은 나라이지만 어디 사느냐에 따라 누구는 저렴하게, 누구는 비싸게 전기료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이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루는 단초가 될 수 있기에 조속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 부처 개편 이전 주무 장관이었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요금제를 세분화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전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지역별 전기 요금의 분리 책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전기 요금 정책을 위한 정부 용역은 올해 끝난다고 했다가 내년 2월로 늦춰졌다. 주무 부처마저 기후부로 바뀌는 바람에 핑계거리는 추가됐다.

그러나 과연 차등요금제 도입 지연이 제도 설계라는 기술적 문제 때문이기만 할까 하는 의구심은 떨칠 수가 없다. 정부가 말로는 ‘2026년 이후’라고 하지만 실제는 2026년 6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6월 3일엔 이재명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지방선거가 계획되어 있어서다. 정권 입장에선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주민 대부분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제도를 서둘러 시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수도권 눈치를 보는 조짐은 벌써부터 나왔다. ‘생산지에서 소비한다’는 개념을 세밀하게 적용해야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는데, 정부 초안에는 전국을 수도권 비수도권 제주 등 3분할로 듬성듬성 나누는 아이디어가 담겼던 게 그 증거다.

전력자급률은 경북(1위)이 262%, 부산(6위)은 155%에 달한다. 발전시설이 워낙 많아 역내 소비량보다 전기가 과잉 생산된다는 의미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과 오픈 AI가 울산과 전남·포항에 각각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는 주요 이유가 전력 확보의 용이성일 것이다. 전기요금이 싸지면 국내 기업도 지방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전기료 경쟁력을 무기로 동남권 산업단지 재활성화가 시급하다.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 신경 쓰느라 차일피일 미적거리고, 몇년 뒤 대선이 다가오면 그때도 유야무야 시킬 속셈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차등요금제는 전임 정부 때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계획에도 들어있다. 비수도권에도 국민 절반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