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캄보디아에서 잇따르는 살인 감금 고문 등 한국인 범죄 피해 대책 마련에 뒤늦게 골몰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엇그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질타를 받고 “특단의 대책을 시행해 캄보디아 정부와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아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캄보디아 경찰과 회담하고 한인 대상 범죄를 전담할 ‘코리안데스크’ 설치와 합동작전 방안을 협의했다. 대통령실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분주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국무회의에서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신속하고 확실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캄보디아 당국 합동단속반이 지난 8월 캄폿주에서 펼친 단속 작전에서 체포한 중국인들을 현지 크메르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들 중국인 3명은 지난 8월 경북의 대학생이 캄보디아에서 고문당한 뒤 숨진 사건을 수사한 현지 검찰에 의해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연합뉴스

정부가 한국인을 신속히 소환하겠다고 하지만, 범죄단 규모나 행위자와 피해자 인원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것부터 문제다. 프놈펜 시아누크빌 같은 대도시 뿐만 아니라 국경에 위치한 포이펫 바벳 등지에는 ‘웬치’라 불리는 범죄단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여기서 총책 관리책 모집책 송금책 자금세탁책 등이 점조직을 이뤄 보이스피싱 로맨스캠 온라인도박 등을 모의하고 실행한다. 여기에 캄보디아 현지인을 비롯해 한국인 중국인 등이 가해 혹은 피해자로 섞여 있다. 일부는 현지 경찰 단속에 걸려 구금 상태이고, 일부는 조직에 잡혀 있다. 외교부가 파악한 피감금 인원은 최소 500명이지만 수천 명이라는 증언도 쏟아진다.

경북의 20대 대학생이 캄보디아에서 범죄조직에 의해 고문을 당하다 숨진 사실이 국내에 알려진 건 지난 8월이다. 그것도 텔레그램에서 활동하는 민간추적단체에 의해서다. 실종 의심 신고가 작년부터 폭증해 연간 수백 건에 달할 정도면 현지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것이다. 외교부가 경찰주재관 증원을 요청한 대목이 그 증거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업무량이 많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교부 요구를 거절했다. 인식의 안일함은 주무 부처인 외교부라고 덜하지 않다. 피해자가 현지 공관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캄보디아 경찰에 신고하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증언이 있다. 외교부는 경북 대학생 사건이 처음 공론화됐을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발뺌했고, 조 장관은 국감에서 “심각성을 지난 주에야 인지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부산 경남 할 것 없이 전국에서 실종 신고가 폭주한다. 대부분 여행이나 취업 목적으로 캄보디아에 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는 내용이다. 지금도 온라인엔 ‘월 수천만 원을 보장한다’는 구인광고가 버젓이 돌아다니며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춘을 유혹한다. 정황상 현재까지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이다. 사태가 이쯤 되면 경찰 단위가 아니라 정부간 이슈로 다뤄야 마땅하다. 캄보디아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수혜국이다. 올해만 4000억 원 넘게 투입됐다고 한다. 캄보디아 정부가 공조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회수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석달째 공석인 주캄보디아 대사 임명도 서둘러야 한다. 국민 입에서 국가보다 자경단이 낫다는 말이 나와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