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을 처음 하는 사람은 대개 재판이 오래 걸린다는데 놀란다. 소장 넣고 3~4개월은 있어야 첫 재판일이 잡히고,1심 선고에만 1년은 걸리는게 보통이다.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면 기약이 없다. “송사 3년에 기둥뿌리 빠진다”는 속설대로 3년은 기본이고, 어떤 재판은 10년씩 걸리기도 한다. 공직선거법 사건은 다른 사건에 비해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1심은 6개월,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안에 끝마쳐야 한다고 되어 있다. 민의를 왜곡한 당선자의 거취를 빠르게 확정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 원칙을 강조하며 지난 5월 1일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례적으로 단 한 달만에 선고했다. 선거법대로 빨리 했으니 문제가 없을까? 아니다. 문제가 너무 심각했다. 이재명의 유·무죄와 무관하게, 이 판결의 이례적인 ‘신속한 절차’가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재판도 사람이 하므로 오류나 부당한 판결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부당한 재판에는 상소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종심이다. 대법원 판결에는 불복할 수 없다. 아무리 억울해도 대법원이 판결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게 1, 2심과의 결정적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은 논란이 적도록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 수 년씩 걸리는데도 참고 기다렸던 것은 그런 신중함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빨리 선고할 수 있는 경우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거나, 상고기각할 때다. 어쨌든 무죄이고, 어쨌든 원심 판결이 유지되는 것이라 당사자인 국민이 받는 충격, 억울함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간 대법원 선고가 빨리 이뤄지는 경우도 거의 대부분 상고기각 또는 무죄의 경우였다. 이재명 사건 선고기일이 유례없이 전원합의체 회부 후 단 9일 만에 잡혔을 때 거의 모든 법률가들이 지지후보와 상관없이 상고기각을 예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기환송, 유죄를 선고할 때는 정말로 신중해야 한다. 설령 대법원 심리의 실상이 재판연구관들이 정리한 1안, 2안 요약보고서만 대법관이 검토하는 것이었다 해도, 심지어 재판연구관들조차 1, 2심 판결문과 상고이유서 중심으로만 검토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 해도,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형식은 그래서는 안된다. 그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해도 그래서는 안된다. 추측과 목격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반응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소고기를 먹으려면 소를 죽인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도축을 실제로 목격하면 앞으로는 쉽게 먹기는 어려워지는 법이다. 재판은 보이기에도 공정해야 한다는 격언이 있는 이유다.

변호사로서 그래도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당사자가 불신을 표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부당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전체로 보면 공정한 곳이 법원”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재명 사건의 대법원 판결 절차는 그러한 신뢰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변호사부터 최종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데 당사자에게 사법시스템을 믿으라는 진심어린 설득이 되겠는가.

(대법원에 1년이상 계류 중)

-당사자 : 대법원 재판이 왜이리 오래 걸리나요?

-변호사 : 원래 원심 판결을 뒤집거나 중요사건은 몇 년씩 걸려요.

-당사자 :이재명 판결은 6만쪽짜리 중요사건인데 9일 만에 파기환송하지 않았나요? 정치적 이유로 미루는 거 아니에요? 로펌에서 대법관에 로비 한 거 아니구요?

- 변호사 : …

(대법원 패소 확정 후)

-당사자 : 이게 끝인가요? 대법원에서 기록을 보기는 본 건가요? 상대방은 대형로펌, 전관이라서 그런거 아니에요? 보수정권이 임명한 대법관이라서 그런거죠? 내용도 제대로 안보고 결론 정해놓고요.

- 변호사 : …

이 판결은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법체계 자체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판결이었다. 재판에 승복하기 어렵게 만들고, 사회적 갈등이 늘어나게 만들었다. 심지어 민의를 왜곡한 당선자의 거취를 신속히 확정하려는 공직선거법의 취지와는 달리, 이 사건은 낙선자에 대한 재판이었다. 신속재판의 필요성이 높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럼 대법원은 정말 왜 그랬을까? 어디선가 이재명은 절대 안된다는 어떤 판단 근거라도 얻었던것일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건 선거와 탄핵 등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재판으로 정리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심지어 국민의 민주적 통제절차까지 믿을 수 없어서 그랬다면, 그건 윤석열과 같은 인식이다. 사법부가 신뢰를 잃으면 변호사도 일하기 어렵다.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을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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