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가 시작되고,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초긴장 상태로 돌입한다. 필자도 수험생 자녀를 두었던 지난 날들의 감정이 지금도 남아 있고, 수능 관련 기사들이 나오면 여전히 눈길이 가는 편이다. 현재의 수능문제와 필자가 겪었던 수험시절의 문제를 비교해 보기도 한다.
최근 어느 영재고 화학교사가 “단언컨대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국가대표로 참가해 금메달을 딴 사람도 수능 화학에서 만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도발적인 글’을 써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수능 실전 문제(‘지난해 화학I 19번 문항’)를 게시하며 카이스트 화학과 출신에 영재고 교사인 자신도 이 문제를 푸는 데 10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위 교사는 이런 문제가 나오는 건 “변별 기능만 강조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현행 수능은 상위 4%가 1등급, 11%까지 2등급인데,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만점자가 11%가 넘으면 한문제만 틀려도 3등급으로 내려가 수험생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포스텍 총장도 “그 문제를 풀어봤는데 시간 내에 답을 찾기 어려웠다”면서 “이런 수능에 의존하는 대학 입시 제도는 바꿔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다.
법관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필자도 수능 국어 비문학 문제인 법률 분야 문제를 보고 황당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법률 문제라고 필자에게 가져와 답을 묻는데, 법률가인 필자도 법률 전문지식을 이리저리 비틀어놓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답을 찾는 것들이 너무 힘들어 ‘그냥 틀려라’고 농담처럼 답했던 기억이 난다. 고백하건대, 문제를 보고 답을 찾기도 힘들었고, 답과 해설문을 보고도 여전히 이해가 안되어서 아이에게 설명조차 해 주지 못했음을 실토한다. 이런 문제를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난감한 마음에 아는 국어 교사에게 학교 선생님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물었더니 ‘선생님들도 못 푼다’는 고백을 들었다.
수년 전부터 반복돼 온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도 익숙한 현상이다. 서울 유수 대학교 문과대학의 입학생 절반 이상이 이과 학생인 것은 통계로도 드러났고, 심지어 전원이 이과생인 문과대학도 많다고 하니 쓴웃음만 날 뿐이다. 이과생들이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문과 침공’ 현상은 수능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표준점수’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2022학년도부터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등급제’나 ‘표준 점수’ 등의 제도가 학생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대학을 황폐화시키는지 이를 고안한 사람은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좋은 의도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안다. 이러한 사례는 정치나 경제, 법률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지만, 교육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가령 학생들의 교육부담을 경감시킨다는 명분으로 시험과목을 줄여 놓으니, 변별력이라는 명분으로 학교 수업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내어 학생들을 줄세우는 작금의 상황도 그 사례가 아닐까 한다(덕분에 대치동 사교육은 호황이겠지만).
하지만 등급제나 표준 점수제는 명분도 쉽게 이해가 안된다. 등급제의 경우 100점과 90점은 같은 등급인데, 90점과 89점은 신라시대 6두품처럼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난다. 표준점수의 경우, 나의 시험점수가 나의 객관적인 점수가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과의 통계적인 차이점으로 산정되므로 자신보다 점수가 떨어지는 친구들이 많은 과목을 잘 선택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 해마다 눈치작전을 펼쳐야 하는데, 과연 이러한 불합리를 언제까지 수긍하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나쁜 제도도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꿀수 없고, 특히 익숙해지면 더욱 개선하려는 의지조차 희미해진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그 범위에서 합리적인 시험을 치고, 합리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당연함에도 우리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비합리적인 과정을 겪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