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개념이 등장한 지 30년이 넘었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물결이 BTS, 블랙핑크 등 아이돌 가수들의 케이팝과 ‘기생충’ ‘오징어게임’ ‘어쩌면 해피엔딩’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작품들과 함께 ‘K-컬처’라는 이름으로 응집되며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음악·영화·드라마·게임·웹툰·푸드 등이 K-콘텐츠를 구성하며, 글로벌 콘텐츠 IP(지식재산권)의 산업화를 앞당기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구축되어 온 한류 열풍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만의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문화강국이라 자부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문화 얘기가 등장할 때면 백범 김구의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소원이 소환되곤 한다. 백범께서 그 말을 했던 이유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억누르고 이기자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이 모두 함께 행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또 함께 주도하자는 뜻이었다. 이 소원에 따르면 문화는 그런 역량이고 힘이라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백범께서 강조했던 문화는 문화예술 차원의 고차원적 능력이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의 인격적 교양과 도덕적 가치’를 의미한 것이었다. 즉, 문화는 우리 삶의 품격과 존귀하려고 노력하는 공감과 배려, 그리고 협력과 상생의 마음을 뜻한다. 이런 마음을 가진 국민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는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더욱더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생각이 따라온다. ‘문화 수준이 높은 도시’는 어떤 상태를 말할까? 도시는 원래 장점이 많은 물적 환경이다. 어원상 도시(city)는 일정 이상의 자격의 고귀한 품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살았던 편리하면서도 안전성을 갖춘 곳이었다. 그래서 소수에 한정된 도시민을 으레 문화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았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도시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고 밀도가 급상승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곳으로만 여겼던 도시에 후유증이 발생했다.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도시가 그만 생존을 다투는 전쟁터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도시의 문화는 여전히 소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한쪽 측면으로 고착되고 말았다. 먹고사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소수만의 문화를 나와 우리의 것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영화 공연 전시 등의 문화가 대중에 확산되었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도 문화를 공급의 대상으로 판단해 문화로 덧입혀진 건축물들을 끊임없이 양산시켰다.
21세기인 지금, 우리의 도시에서도 문화는 방황하고 있다. 문화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성과물이나 가시적인 결과물이 아니고 또 어느 한쪽의 전유물도 아님을 이론으로는 알지만, 여전히 문화에 대한 오해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퐁피두센터 조성 때문에 파열음이 계속된다. 1977년 파리 도심에 들어선 퐁피두는 유럽 최초의 현대미술 전문 박물관이자 20세기 현대미술을 선도하는 복합문화의 메카로 거듭났다.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을 품은 채, 루브르박물관과 노트르담대성당과의 보행 삼각 구도는 유명세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바로 옆에 파리 최고의 역사 거리로 꼽히는 마레지구가 있고, 파리역사국립문서관, 피카소미술관 등 여러 뮤지엄과 매력적인 광장·분수는 퐁피두로 발길을 재촉했다.
1970년대 퐁피두가 기획되고 지어지던 때, 그곳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파리다움’과 관련된 논쟁이었다. 철골과 유리의 속이 드러난 퐁피두의 외관이 중세와 바로크 시대를 넘나드는 파리의 석조 건물들과 너무 이질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파리에 깊게 스며든 퐁피두는 파리의 상징체가 되었고, 그들의 문화는 서너 단계 격상되었다.
이런 퐁피두가 부산에 수입된다는데 왜 이리 논란이 많은 것일까? 들여다보니 쟁점이 문화에 대한 이해 차이와 수입 방식과 관련된 문제로 나눠진다. 가지려는 문화에 대한 공감 없이 돈으로 쉽게 문화를 사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지려는 문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문화를 돈으로 살 수 있는가? 문화를 명령이나 강권으로 누리게 할 수 있는가? 문화시설이 많아지면 우리가 문화인이 되는가?
백범께서 소망했던 문화를 다시금 곱씹어 보니 문화는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같은 물질적인 힘에 반하는 내적인 힘이고 품격이란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도덕적인 보편적인 가치로 정의되는 정신의 문화만큼이나 작품이나 공간 위주로 판단되는 물질의 문화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생각이 뚜렷이 갈라져 버렸다.
대학원 시절 ‘문화적인 삶’에 대해 논하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혈기왕성하고 고민이 많던 때였기에 문화적인 삶은 인간의 뛰어남이 강조되는 예술을 누리는 풍요의 삶이기보다는 양심적인 길을 택하며 살아가는 보통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다. K-컬처가 그러하듯 진정한 문화는 내발적인, 즉 스스로의 것에서 우러나오는 힘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라면 정신의 문화가 물질의 문화를 앞서가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