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로 고통받던 감정노동자가 어느 날 드디어 해결책을 구했다며 내게 말했다. “직장에서 나와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니까 견디기가 좀 나았어요. 일터에서의 나는 영혼이 빠져나온 자동응답기이고 키오스크다,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그녀는 매일 사직하는 마음으로 출근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무대에서 다중 인격을 연기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영혼, 그녀는 어디서 자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달 온라인상 언급량이 폭증한 단어가 갑질이었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논란 때문인데 외신은 발음 그대로 ‘Gapjil’로 적으며 “한국에서 중세의 영주처럼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라고 소개했다. 왜 하필 한국의 신조어일까? 갑질이란 말에는 뿌리 깊은 가부장주의, 권위주의와 괴이한 한국식 자본주의 발전사가 새겨져 있다. 결국 후보자는 낙마했지만 그의 말은 남았다.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많으냐”는 심리적으로 명백한 갑질의 언어다. 행동으로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야 입에 달라붙는 언어. 세상에 좋은 갑질은 없다. ‘딸 같은 며느리’라는 표현은 가능해도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듯 보좌진은 식구가 아니다. 의원과 보좌진의 위계적 관계는 일반 직장과 완전히 동일하며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게 바로 갑질이다.

내가 만난 감정 노동자들은 대체로 불행했고 갑질 피해자는 더욱 불행했다. 그들은 수비수로 산다. 수비만 해야 하는 선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어떤 공격에도 잘 지켜야만 한다. 갑질 피해자에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나는 있는데 내가 없는, 지독히 서글픈 분열. 갑질은 영혼을 죽인다. 상대를 인격이 없는 사물로 내몰아 몸과 마음을 소진시킨다. 죽음은 다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며 죽을 수 없으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 달력의 날짜는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이어달리기 바통인데 피해자는, 죽지 않는 어제가 오늘로 이어져 현재에 영원히 갇혀버린다. 그것이 트라우마의 본질이고 그들의 일상이 평화로운 지옥인 이유다.

갑질 가해자에게도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현저한 공감능력의 저하, 정신의학계에서는 갑질을 권력중독의 일종으로 본다. 권력은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다. 권력을 행사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락을 제공하지만 문제는 도파민의 부정적 효과인 중독이다. 권력중독에 빠지면 뇌 자체가 변한다. 타인에 공감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권력은 오직 ‘더 많은 권력’ 일 때만 만족을 준다. 모든 중독의 문제는 내성과 금단증상인데 짧은 쾌락을 연장하기 위해 ‘더욱더’의 덫에 빠지는 것이다. 갑질은 권력감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중독의 얼굴로 등장하고, 함부로 화풀이를 해도 뒤탈이 없었던 잘못된 경험이 축적되면서 일상화된다.

한국의 직장 내에서 갑질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9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반대로 본인이 갑질을 한 적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20%만 그렇다고 답했다. 어째서 당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을까? 갑의 자기 합리화에 이미 권력형 위계가 녹아있는 게 아닐까. 피해자가 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이유는, 갑의 응답이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면 고의가 아니라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관행으로 둘러대며 결국 피해자의 예민함 탓으로 치부한다. 피해자는 인격을 침해당하고도 이상한 사람으로 내몰리며 결국 내가 문제인가? 자기 검열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무기력 속에서 영혼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한다. 그들에겐 회복해야 할 상처와 되찾아야 할 존엄이 있다.

세계 불평등 연구에서 한국은, ‘일상에서 타인에게 존중받는다’는 항목에서 세계 최하위권이다. 위계질서의 사다리 안에서 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갑이 된다. 내가 만났던 갑질 피해자가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을 한 가해자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사회적 관계망은 무수히 겹치고 교차한다. 누구나 상대적인 약자에게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한 타인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게 힘겨운 시대다. 한나 아렌트는 악한 행동의 대부분은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해서 발생한다고 했다.

갑질이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영혼이 깃드는 틈새를 확보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인격이나 성찰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존엄한 인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갑질은 망각을 선택하는 오류이기 때문에 우리는 생존의 흐름에 휩쓸릴 때에도 공통성의 기본을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일터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기,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기. 그건 친절이나 선함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평등의 실천이다. 간신히 아무도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