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형사가 요리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다. 검사는 판사가 음식을 먹기 전 형사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고 간이 덜 되었다면 소금을 조금 더 넣어달라고 조언하는 사람이다. 형사가 김치볶음밥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잘 익은 김치와 밥, 시장에서 산 싱싱한 채소 등을 넣어 요리한다. 볶음밥을 만들어 검사에게 주니 조금 싱거운지 간을 첨가한 뒤 판사 앞에 내놓는다.

부산 모 경찰서 강력팀장으로 근무할 당시 사건이다. 7살 연상인 여성과 동거하는 피의자가 동거녀를 칼로 살해했다. 피의자는 멍하니 자리를 지키다가 잠시 후 경찰에 전화를 했다. “제가 술에 취해 싸우다가 그만 사람을 죽였어요.” 지구대 경찰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하고 강력팀 형사들도 현장에 도착한다. 방안에는 피해자의 피가 흥건하다. 형사는 그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고 경찰서로 압송해 조사한다.

피의자는 범행을 자백했고, 이후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돼 검찰로 송치된다. 검사는 자백한 피의자를 ‘살인죄’로 판사 앞에 기소하면 될까? 볶음밥에 비유하면 밥과 김치, 각종 야채를 제대로 볶지도 않고 간도 하지 않은 채 그냥 판사 앞에 내놓는 꼴이다. 형사소송법에는 ‘자백보강법칙’이라는 대원칙이 있다. 피의자가 동거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해도, 그 자백이 유일한 증거일 때는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는 대원칙이다. 살인 사건 현장에 가면 형사들이 바빠지는 이유다.

과학수사팀은 현장에 대한 사진 촬영과 감식을 진행한다. 이후 부검으로 칼에 의해 사망한 것이 맞는지, 칼의 방향·깊이·종류는 현장에서 발견된 칼과 일치하는지, 범행 전 구입한 것인지 평소 부엌에 있던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를 수사한다. 물론 사건 현장의 CCTV 확인은 기본이다.

피의자와 동거녀의 휴대전화에는 싸움의 원인이 될 만한 자료가 있는지, 평소 관계는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휴대폰의 포렌식도 의뢰한다. 말 그대로 각종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집한 증거가 피의자의 자백과 일치해야 비로소 판사는 징역형 등을 선고할 수 있다.

500년 전 조선시대로 돌아가 보자. 소를 훔쳤다고 누명을 쓴 사람을 잡아다 취조하면서 “네 이놈 네 죄를 알렷다! 소를 훔쳤다고 이실직고 못하겠느냐!”라고 형방이 소리를 지른다. 억울한 백성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항변할 뿐이다. 이때 사또가 한 마디 거든다. “저 놈 입에서 소를 훔쳐 갔다고 할 때까지 매우 쳐라.” 고문이 시작되면 백성은 살기 위해 소를 훔쳤다고 자백한다. 자백을 하는 순간 재판은 끝난다. 백성은 억울하지만 자백에 상응하는 죄를 받을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재판이지만 말이다. 과거 동·서양 역사의 반성으로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의 대원칙들인 ‘무죄추정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 자백 보강의 법칙’은 국가 형벌권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예로부터 싸워서 만든 인권의 산물들이다.

현장의 수사관에게 법의 대원칙은 이상이 아닌 실천이어야 한다. 원칙을 지키는 길이 어렵더라도, 그것이 곧 정의를 지키는 길이다. 경찰의 힘은 원칙 위에 설 때 강해진다. 법과 원칙, 국민의 신뢰를 지키는 사명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늘도 요리를 하기 위해 형사들은 시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