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무더위의 낮은 기린의 목처럼 길고, 선선한 바람 부는 밤은 자라의 목처럼 짧다. 쳐들어갈 것을 예고하듯 애~앵 귀를 울리던 모기는 반바지 차림으로 있는 야윈 다리의 피를 빨고 가버리니 가려움이 절정이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치통은 무더위의 기세를 한층 더 올린다. 변심한 애인 같은 여름 날씨를 살다 보니 마음마저 다스리기 힘들다.
나는 어릴 적 충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치아가 좋지 않다. 치열도 고르지 않다. 결혼 후 아내는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웃을 때 자꾸 입을 가리고 웃어서 이상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고르지 못한 치열을 숨기기 위해 은연중 이런 버릇까지 생긴 모양이다. 내가 이가 아파 치과에 간다고 하면 이가 건강한 아내는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늙어가며 또 이가 말썽을 부려 치과에 간다. 치과에 수없이 갔지만 치과 의자에만 앉으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왜 그럴까? 어린아이도 아닌, 세상 풍파를 다 겪었다면 겪은 어른인데 힘을 빼지 못하고 온몸에 힘을 주어 의사의 치료를 어렵게 한다. 다른 사람들도 치과에서는 그럴까? 물론 그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들어 “힘을 빼세요”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치과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히면 의사는 “아~ 하세요”라고 말한 뒤 왼손으로 나의 오른쪽 어깨를 툭툭 치며 “힘을 빼세요”라고 말한다. 치료 기구를 입속으로 넣는 순간 내 몸은 전기에 감전된 듯 잔뜩 힘이 들어가고, 마른 명태처럼 뻣뻣해지며 호흡이 곤란해진다. 그러면 의사는 “저를 도우려 하지 마시고, 몸에 힘을 빼고 숨을 쉬세요”라고 말한다.
의사는 “아프면 아프다고 하세요”라고 말하는데 입을 벌린 상태여서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몸에 힘을 주어 아픔을 참아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몸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다. 의사도 힘든지 입에서 치료 도구를 빼고 다시 “심호흡하고 힘을 빼세요”라며 어깨를 툭툭 친다. 역정을 낼 만도 한데 의사는 살갑게 대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사명감이 없다면 못 할 일이다. 그런 의사가 고맙다.
나는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치료는 계속된다. 힘을 빼면 쉽게 할 수 있는 치료를, 힘을 주고 있었기에 의사는 고되게 치료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치료를 마치고 축 늘어진 몸과 얼얼한 얼굴로 병원을 나선다. 여름 염천의 더위가 나를 갈군다. 가로수 그늘을 찾아 징검다리 건너듯이 걸음을 옮긴다. 태양은 햇살을 전쟁터의 화살처럼 온천지에 쏟아붓고 있다.
아스팔트 길가의 가로수는 잎을 축 늘어뜨리고 편안한 자세로 서 있다. 힘을 쭉 빼고 있다. ‘옳다. 바로 저것이다’하며 아픈 이도 잊고, 이마를 ‘탁’ 친다. 꼭, 바보가 도를 깨친 행동 같다.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면서도 힘을 빼고 서서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가로수의 지혜를 발견한다. 가로수는 저렇게 여름 더위를 현명하게 이겨내고 있지 않은가. 태풍이 불 때도 부러지지 않으려고 힘을 빼는 것을 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힘을 빼고, 여름을 넘긴 때가 있었다. 어릴 적 낙동강에서 미역을 감을 때 나는 힘을 빼고 드러누운 채 헤엄을 쳤다. 흐르는 강물에 드러누우면 물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내려가는 재미가 좋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여름을 즐겼던 기억이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고, 하늘엔 흰 구름 두둥실 떠가고, 강가에 솟은 산의 신록은 무르익어 푸르렀다. 물살을 힘주어 거스르지 않으면 더위는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다음 번 치과에 가면 치과 의자가 흐르는 강물이라 생각하고 그 위에 드러누워 떠내려가는 상상을 해야겠다.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요즘 세상은 더위 탓인지 몸에 힘을 잔뜩 준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서로 이기려는 욕망과 다툼으로 사는 듯하다. 나도 치아를 치료해 주는 의사처럼 다투는 사람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을 빼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힘을 빼면 이기려는 욕망과 다툼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천지가 쇠를 달구는 아궁이처럼 덥지만, 힘을 빼고 마음을 잘 다스리면 염천의 더위쯤은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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