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은 제헌절이었다. 그리고 오는 15일은 광복절이다. 이 시기가 되면 필자는 나름 ‘울림’의 시간을 갖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36년 동안 조국을 잃었고,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자국에 의한 완전한 독립이 아니었기에 거대한 세계적 정치 논리와 이념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3년여 미군정을 거쳤고, 1948년 남한에서만 ‘5·10총선거’로 198명(의석수 200명 중 4·3사태로 2명 제외)이 선출돼 제헌 국회가 탄생했다. 이어 1948년 5월 31일부터 7월 12일까지 43일 동안 총 28차에 걸친 회의를 통해 ‘국가의 기초’인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했고, 7월 17일 공포했다. 이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2·3 계엄 이후 헌법에 대한 관심이 시민 사이에서도 매우 높아져, 필사를 해서 인증샷을 올리는 새로운 문화 현상도 생겼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이 되는 법이다. 국가의 구조 조직 체계를 정립하는 기본법이며, 국민의 주관적 기본권과 객관적 가치질서를 규정한 법이다.
필자는 ‘헌법제정회의록’을 다시 펼쳤다. 제헌 의원 198명이 국가와 민족의 만년대계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논쟁하며 피 끓는 심정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었는지, 그 진한 온도와 심장의 요동침을 느끼고 싶어서다.
헌법제정회의록을 보면, 1948년 5월 31일 오전 10시20분께 국회 제1차 회의를 개의했다. 6월 1~2일 제2·3차 회의를 통해 헌법 제정을 위한 기초위원 30명을 선출했고, 6월 23일 제17차 회의에서 대한민국 헌법안에 대한 제1 독회가 조헌영 의원의 낭독으로 시작됐다. 전문과 총 102조로 구성된 헌법안이었다. 제1 독회는 6월 30일 제21차 회의까지 총 5차에 걸쳐, 제2 독회는 7월 1~7일 총 7일 동안 총 6차 회의(제22~27차)에 걸쳐 진행됐다. 거의 매일 모여 조문 하나하나 검토하고 논박했다는 의미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7월 12일 제28차 회의에서 제3 독회를 끝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됐다.
특히 눈에 띄는 조문이 있다. 바로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즉,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을 규정한 것이다. 당시, 이를 기본권 규정에 넣을지 경제 규정에 넣을지에 대해, 그리고 국영·공영 기업까지 포함시킬지, 사기업에만 국한시킬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사기업에 있어서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당시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198명의 제헌국회의원들의 ‘결단’이었다.
1948년 7월 5일 제25차 회의 당시, 문시환 의원의 수정안에 대한 찬반양론 상황에서, 의장이었던 이승만의 발언, 즉 “내 생각하는 것은 17, 18, 19조의 조문이 원만히 된 것 같은데 아직까지 만일 부족한 것이 된다면 이 하나를 넣으면 괜찮겠어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지주와 자본가와 근로자는 공동한 평균이익을 국법으로 보호한다, 이것을 맨드러(만들어) 놓으면 이것은 원만한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헌법제정회의록 중 제25차 회의 속기록 발췌)은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비록 문시환 의원의 수정안은 부결됐으나, 조병한 의원의 수정안이 재석의원 180인, 가 91인, 부 88인, 기권 1인으로 과반 1표를 넘겨,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이 헌법상 기본권으로 규정됐다.
다만,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후 제5차 개헌(1962년 헌법)으로 삭제됐지만, 제헌헌법 제28조 이래 현행 헌법 제37조 제1항(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을 근거로 본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만들면서 확립한 기본권은 여전히 그 헌법정신이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 ‘개헌’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듯하다. 지난해 12월, 우리는 비상계엄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렸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한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둘려지는 것도 목도했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평화와 안정은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헌법수호의 의지를 다시금 확고히 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개헌 역시, 이러한 바탕 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