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예테보리에 사는 암 환자가 수도인 스톡홀름으로 치료받으러 가는 일은 없다. 독일 뮌헨에 거주하는 환자가 베를린으로 가거나 프랑스 리옹에 사는 환자가 파리로, 영국 맨체스터 주민이 암 치료를 위해 런던으로 가는 일도 없다. 전국의 광역 의료권을 중심으로 자기 완결적 보건의료 체계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보건의료의 지역적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지역 간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건의료의 적극적·형평적 발전과 투자를 지지·지원한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제주도 암 환자 대다수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간다. 부산도 광주도 거의 마찬가지다. 서울과 가까운 대전 대구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지방의 대형 병원들은 의학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환자를 접할 기회가 크게 줄었고, 고도 의료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졌다.
이렇게 해서 환자들이 서울로 가야 할 이유와 논리는 강화되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거점도시들이 광역 의료권의 중심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고, 앞으로 광역 거점 의료는 더 위축될 전망이다. 게다가 다수의 소규모 시·군은 사실상의 의료 소멸이 걱정된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정치·경제·재정·문화적 지역 분권 체계 속에서 보건의료가 지속적·포괄적 발전을 이루도록 노력해 왔다. 중앙 정부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 지방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실행을 위한 법적·행정적 기준을 제공하고 재정을 지원한다. 즉, 중앙 정부의 방향 제시에 따라 지방 정부는 현지의 맥락에 맞는 접근으로 유연하고 실효성 높은 보건의료 정책을 책임성·융통성 있게 추진한다. 이런 기조에서 지역 보건의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유럽의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 유럽 지역사무소(WHO Regional Office for Europe)는 ‘복지 경제에서의 건강(Health in the well-being economy)’을 출간했다. ‘복지 경제’는 건강과 복지, 공정성, 지속 가능성을 모든 종류의 정책 수립과 투자에서 우선순위로 삼는 경제 사고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생활비 상승, 기후 변화, 고령화, 의료 인력 부족, 정신 건강 악화,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 환경 문제, 경제와 건강의 불평등 확대 등의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적·지역적 차원의 정책적 해법이자 발전 동력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복지 경제’ 개념인데, 복지 투자로 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다양한 분야에 공동 혜택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여기서 모두의 건강을 위한 보건의료 체계가 보건의료 고용과 구매를 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지역사회 개발에 이바지하는 주요 경제 분야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2024년, 세계보건기구 유럽 지역(WHO European Region)은 제29차 건강을 위한 지역 네트워크(Regions for Health Network) 연례 회의를 이탈리아에서 개최했다. 건강한 노화, 보건 및 돌봄 인력, 복지 경제, 건강의 상업적 결정 요인 등이 주제였는데, 이 회의의 구체적인 목적은 ‘평등·형평성·포용성에 중점을 둔 지역사회의 복지 향상’, ‘보건의료와 경제사회의 지속 가능성 증진’, 그리고 ‘지역의 건강 결과와 회복력 개선’ 등이었다. 여기서 지역사회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일차 의료 기반의 ‘원격의료’와 ‘인공지능 활용’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우리나라도 국민건강보험의 보편적 의료보장 강화 기조에 제대로 조응하는 지역 완결적 보건의료 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즉, 적극적 보건의료 투자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작동하는 지속 가능한 복지 경제 체제를 구현함으로써 갈수록 심해지는 건강·의료 불평등과 목전에 다가온 지역 소멸의 비극을 막아내야 한다. 지역 완결형 보건의료 체계는 건강 형평성의 증대와 복지 경제의 성장·복지 효과를 통해 ‘행복 지역사회’를 건설하는 최고의 방책인데, 세부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사회 건강주치의 제도를 통해 지속적·포괄적 일차 의료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즉, 지방 정부와 보건소 등의 공공 보건 역량이 건강주치의와 유기적으로 협력해 지역사회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뿐만 아니라 사람 중심의 총체적 건강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둘째, 건강주치의 중심의 진료 의뢰·회송 체계를 통한 합리적·효율적 의료 이용을 확립해야 한다. 환자는 건강주치의의 의뢰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 후 병원 전문의의 환자 회송과 건강주치의에 의한 지속적 관리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셋째, 광역 의료권에서 고도 의료를 담당할 거점 병원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넷째, 지방 정부는 ‘건강주치의-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의 선순환 구조인 ‘지역 완결형 보건의료’ 체계를 확립하는 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선제적 건강·의료 투자를 통한 복지 경제의 구현으로, 지역사회의 건강 형평성 제고와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최상의 전략이다. 여기서 꼭 필요한 것이 건강주치의 기반의 지역 완결적 의료 정보, 그리고 원격의료와 인공지능의 활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