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의 시구자는 정치인 연예인이 주로 나섰고 당대 주목받던 스포츠 스타도 한몫했다. 정치인으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MBC 대 삼성 개막전에서 처음 시구를 했고, 연예인은 같은 해 4월 8일 영화배우 강수연이 해태-빙그레 광주 개막전에서 시구자로 나섰다. 영화배우 한석규, 가수 엄정화 등 연예인과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등 정상급 스포츠 스타들도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해 6월 9일 부산 사직구장에 역대급 시구자가 떴다. 주인공은 인기 급상승 중이던 걸그룹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였다. 이날 카리나는 롯데와 SSG의 더블헤더 2차전 시구자였지만 1차전 경기가 길어지며 자칫 시구를 못할 상황에 놓였다. 팬들은 경기 승부보다 카리나의 시구를 보지 못할까봐 더욱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카리나는 예정시간 보다 30분이나 늦은 오후 5시까지 기다리며 결국 시구에 나섰고,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히 찔러넣는 완벽한 시구를 선보였다. 이날 롯데는 1차전에서는 SSG에 1-5로 패했지만, 카리나의 기운을 받은 2차전에서는 5대 3으로 승리했다. 카리나는 ‘승리의 여신’으로 떠올랐다.
지난 1일 롯데는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경기에서 깜짝 시구자를 초청해 야구팬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시구 직전까지 롯데의 마스코트인 ‘윈지’가 시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단 측은 김창현 사진실장에게 ‘깜짝 시구’의 자리를 선물했다. 김 실장은 2008년부터 구단 공식 사진 담당으로 18년간 선수와 팬을 촬영해왔다. 이날도 윈지의 시구 모습을 촬영하려던 김 실장은 시구자로 본인이 깜짝 소개되자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타자는 김 실장의 장인이었다. 김 실장은 인터뷰에서 “롯데자이언츠가 우승하는 모습을 꼭 제 손으로 찍고 이를 팬들과 나누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롯데는 이날 역시 승리했다.
롯데가 지난 2일 구단 유튜브 채널에 올린 이 영상은 업로드 4일만에 조회수 20만 회, 1만1000개 이상의 ‘좋아요’를 모으며 호응을 얻고 있다. 많은 네티즌은 “이게 롯데자이언츠의 감동이다” “낭만이 살아있다” “이게 진짜 야구의 매력이다”며 감동을 나눴다. 앞서 롯데자이언츠는 미화원, 경호과장, 그라운드 키퍼 등 선수와 팬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시구자로 세우거나 관련 영상을 제작해 감사를 표해왔다. 김 실장의 염원을 담아낸 롯데는 올해 ‘가을야구’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정환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