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자서전 격 단편소설 ‘곡예사’에 피란민의 난감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렇다고 우리가 여관을 찾아갈 수도 없는 형편인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생각다 못해 우리는 분산해서 숙박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다다미 열 장 방에 세 가구(그 도합 무려 열아홉명)가 들어있는 부모가 계신 남포동으로 가 어떻게든지 끼어 자기로 했고, 큰애 둘은 한 칸 방에 여섯 식구가 들어있는 외갓집으로 보내고, 끝의 두 애와 아내는 하는 수 없이 그냥 처제네 방으로 갔다.”
부산은 그런 도시였다. 10평 방에 19명이 살았듯, 30만 정도가 살면 적합한 도시에 서너 배가 넘는 사람들이 극한의 혼란 가운데 생존했던 마치 끓는 용광로와 같은 도시였다. 국토 끝단에 자리한 피란수도 부산은 최대 백수십 만의 피란민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부산의 모든 공간에 피란민을 수용토록 조치했다.
이는 ‘한방 내어주기’라는 사회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여기서 새로운 부산의 속성이 탄생되는데, 그것은 ‘포용성’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쟁의 희생자들을 품었던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와 최초 현충시설이었던 범어사 보제루의 존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산에는 8000여 구의 적군이 묻힌 묘지가 있었다. 즉, 부산은 피란민과 사상자는 물론 적군까지 품은 도시였고, 진정 인류애가 빛나는 포용의 도시였다.
국제사회의 지원은 놀라웠다. 여러 방법으로 지원했던 63개국(당시 전 세계 독립국 93개국 중 68%)의 관여는 많은 인명과 물질적 피해를 줄이게 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전쟁 역전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전쟁 발발 30여 일 만에 밀리고 밀려 8월 초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었다. 이 방어선이 뚫리면 대한민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45일을 버텨냈다.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하도록 시간을 번 것이었다. 이 시간을 버티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단연 ‘부산항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이 사실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또한 전쟁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극도의 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부산의 도시 체질 개선을 위해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꿈꾸기 시작했다. 2015년 당시 부산연구원 김형균 부산학센터장(현 부산테크노파크 원장)의 발의로 지역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었고, 이에 부산시가 화답하고 시민도 나섰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2022년 고대하던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2023년 5월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올랐다.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근대역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길이 열린 것이었다. 또 정부가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등재 잠재력을 인정한 것이었다. 2025년, 지금도 걷고 있다. 2029년 즈음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많은 이들이 함께 걷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얻게 된 것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란수도’라는 이름이다. 임시라는 말을 떼어 내고, 국가 혼란을 피했다는 피란이란 말이 정착되었다. 이젠 부산 시민 대다수, 국민의 상당수가 부산을 피란수도라 부른다. 등재를 추진하며 계에서 격상된 ‘문화유산과’가 탄생 되기도 했다.
화룡점정은 ‘부산항 제1부두’다. 원래 1부두는 북항재개발 계획상 도로 관통 후 매립되어 소멸토록 되어 있었다. 시민 염원에 관(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의 결단이 더해져 도로를 물러나게 했고 1부두를 지켜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1부두는 우리나라 최초로 부두시설이 문화유산으로, 또 역사공원으로 재탄생되는 창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얻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대한민국을 구하며, 재건에 희생된 도시’라는 부산의 지난 역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지 않을까 싶다.
유엔기념공원 개원 70주년을 맞아 2021년 11월 부산에서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에서의 독백을 잊을 수 없다. 독백의 주인공은 영국군 보병으로 참전했던 참전용사 브레인 호프(Brain Hough)였다. 그는 “(중략)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모두 잊혔을 친구들이 부산의 묘지에서 살아있을 때처럼 늘 함께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보살핌 속에서 영원히 젊은이로 남아 있습니다. (중략) 여러분은 제 과거를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들의 나라에 헌정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마디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친구들을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70년의 긴 세월로 인해 비록 발음은 어눌했지만, 들려오는 의지에 찬 그의 목소리는 결코 노병은 죽지 않았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난 70년 동안 유엔묘지에서의 보살핌 가운데 친구들이 영원히 젊은이로 남아 있다는 노병의 독백 아닌 독백은 대한민국을 향한, 아니 부산을 향한 ‘웅대한 선언’과도 같았다. 그의 선언은 이제 부산을 평화와 인류애의 도시로 이끌고 있다.
며칠 전, 부산이 2026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후보도시로 선정되었다. 오는 15일 파리에서의 최종 선정 소식이 벌써 기다려진다. 내년은 개항 150주년이 되는 해이니 더더욱 의미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