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프랑스 파리의 미로와 같은 골목과 하수구 묘사가 생생하다. 주인공 장발장은 딸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가 총상을 입고 위기에 처하자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도를 통해 구출한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전후가 배경이다. 2월 혁명을 계기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를 첫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나폴레옹 3세의 대표적 업적은 파리 도시정비다. 그는 복잡하게 뒤엉키고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는 골목길을 대대적으로 다듬어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를 만들었다. 지하에는 지하도로와 하수관을 정비했다. 파리 하수도 시스템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는 하수도박물관이 관광명소가 될 정도다.

맨홀은 사람(man)이 들어가는 구멍(hole)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수도 상수도 전기·통신선이 모여 있으며,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통로다. 사람이 맨홀을 통해 들어가 시설을 점검하지 않으면 도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맨홀 뚜껑은 아무나 쉽게 열 수 없도록 두꺼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다. 고철로 팔면 돈이 될까 해서 맨홀 뚜껑을 훔쳐 가는 도난 사건이 간혹 일어난다. 뚜껑이 없어져 맨홀이 열려 있거나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차량 바퀴가 걸리거나 사람이 빠질 수 있어 위험하다.

실제로 태풍 ‘카눈’이 상륙한 2023년 8월 경남 창원에선 60㎏에 달하는 맨홀 뚜껑이 버스 바닥을 뚫는 사고가 일어났다. 하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하수도 물이 역류하자 엄청난 수압으로 무거운 맨홀 뚜껑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2022년 8월 서울 서초구에서는 40, 50대 남매가 맨홀 아래로 추락해 숨지기도 했다. 지난 14일 새벽 부산 연제구 한 거리에선 폭우로 뚜껑이 열린 맨홀에 길을 지나가던 30대 여성이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주변 상인 2명이 맨홀 안으로 들어가 여성을 구했다.

집중호우 때 맨홀 뚜껑이 도시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부산시가 침수 우려 지역 내 모든 맨홀에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하기로 한 이유다. 부산시는 이달 중 부산 내 17만 여개 맨홀을 전수조사하고, 올 하반기 우선 1만4000여 개에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현재 설치율은 15.5%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2022년부터 신설 맨홀에는 추락방지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기존 맨홀은 상습침수구역부터 우선 정비하도록 했다. 부산시가 전체 맨홀 주변을 정비하는 데는 여러 해가 걸릴 듯하다. 장마철 침수 순간 수만 개 맨홀이 ‘죽음의 블랙홀’로 돌변할 수 있다니 걱정스럽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