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필자는 ‘미지의 서울’이라는 드라마를 꽤 재미있게 시청했다. 드라마 주인공이 상사의 비위행위를 고발한 선배를 돕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흔한 드라마 소재이긴 한데, 이번만큼은 유독 주인공이 느꼈을 모욕감과 정신적 고통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아마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찾아온 한 의뢰인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의뢰인 말에 따르면, 약 4년 전 팀원이 팀장(의뢰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고, 조사 결과 ‘해당사항 없음’으로 판단되었는데, 그 팀원이 4년 전 것을 가지고 다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신고 사유는 ‘팀원이 팀장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의로 시간외 근무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팀장에게 출장 처리를 요구한 것에 대해 팀장이 거부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다’란 것이다. 당시 팀장은 팀원의 시간외 근무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출장 처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동일 팀원들 여럿이 돌아가면서 반복적으로 의뢰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했고, 모두 ‘해당사항 없음’으로 판정이 났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팀원들이 아무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한 사람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겠어?” 또는 “뭔가 신고당할 이유가 있겠지?”

문제는 이렇게 신고당한 사람은 필자의 의뢰인만이 아니었다. 의뢰인과 함께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 동일 팀원들로부터 여러 차례 신고를 당해 감사실로, 인사위원회로, 징계위원회로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비록 ‘경고’라는 가장 경한 징계를 받았지만, 결국 그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에 심한 모멸감과 회의를 느꼈고, 팀원들의 반복적·조직적 행동에 염증과 두려움을 느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일명 ‘망신주기식’ 또는 ‘찍어내기식’의 악의적인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의뢰인은 그들을 상대로 역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고 싶어, 회사의 자문 노무사에게 물어보니,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 중 하나인 ‘지위의 우위성’을 충족하지 못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답변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를 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지위의 우위성’만이 아니라 ‘관계의 우위성’이 인정되면, 얼마든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판례는 직위·직급 체계상 상급자가 아니더라도,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될 수 있는 다양한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관계의 우위성’을 인정하고, 그에 터 잡아, 피해자가 상급자이고 가해자가 하급자라고 하더라도, 가해행위가 발생한 전체적인 경위와 맥락 등을 참작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20구합84143 판결 등).

여기서 잠깐! 우리가 수년간 고민해서 입법화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의 가장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약자 보호’가 아닐까?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인간의 정신을 피폐화시키는 ‘강자의 괴롭힘’을 막아보자는 것 아닐까? 다수 앞의 소수는 약자다. 이런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도 정치해져야 한다. 단순히 ‘신고자=피해자’, ‘피신고자=가해자’ 등식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 ‘10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는 법언과 궤를 같이한다고 본다.

덧붙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하여 신고와 징계 및 처벌에 집중된 현행 입법 구조의 변화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형사 고소를 하니, 상대방이 무고로 맞고소를 해서, 다시 그 상대방을 무고로 재(再) 맞고소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신고와 처벌만이 답은 아니다. 직장 내 상호 공생과 공존을 위해, 상호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조직 문화와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