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오랫동안 도시정책의 핵심 키워드였다. 더 많은 인구, 더 큰 경제, 더 높은 건물과 더 빠른 속도는 도시의 발전을 상징했고,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 성장의 기조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제 세계 도시들은 다른 이름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축소도시(shrinking city)’라는 현실이다.

‘축소도시’란 인구 감소, 산업 쇠퇴, 재정 축소 등으로 도시 규모 자체가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중소도시들은 말할 것도 없고 뉴욕, 통독 이후 베를린, 도쿄 등의 대도시에서도 일부지역 혹은 계층적 축소가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축소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대표 도시 중 하나다.

부산의 총인구는 1995년 383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24년 기준 331만 명 수준으로 50만 명 이상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 고령화, 자연감소가 겹치며 도시 전체가 구조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산은 2022년 기준 출생아 수 대비 사망자 수가 2배에 달하는 ‘자연감소형 도시’로 이미 전환되었고,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전국 평균(18.4%)보다 3%포인트 이상 높은 21.5%에 달한다.

문제는 도시정책이 여전히 ‘성장 전제형’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주택공급은 지속되고 있으나 인구는 줄고, 신도시는 확장되지만 구도심은 공동화가 가속화된다. 기반시설은 유지비만 늘어나고, 도심 내 빈집과 공실은 증가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부산의 빈집 비율은 2020년 기준 5.6%, 일부 원도심 지역은 10%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역경제 위축, 도시 활력 저하, 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이제는 “더 많이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줄어들 것인가”를 설계하는 전환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실패한 정책의 수습이 아니라, 축소를 전제로 한 전략적 계획의 수립, 즉 ‘스마트한 축소도시 지향(Shrink Smart)’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도시의 수축, 즉 줄어드는 도시가 반드시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도시는 작아지면서도 더 효율적이고, 더 지속가능하며, 더 살기 좋은 공간으로 재편될 수 있다. OECD는 “도시의 축소 관리 능력이 미래 도시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미 유럽 도시들은 수축에 대응한 다양한 혁신실험을 통해 도시 브랜드를 재정의하고 있다. 단순한 도시축소의 관리가 아니라, 인구감소·경제쇠퇴·공간공동화를 전제로 한 지속가능한 도시 재구조화 전략이다.

뉴욕이 창조산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베를린은 공공재생과 문화중심으로, 도쿄는 도심역세권 중심의 고밀도 재생 즉 ‘컴팩트시티+철도망중심’ 개발로 성장방식을 재구조화했다. 이들 도시에서는 공간 재해석, 시민참여의 합리적 확대, 지속가능성 추구, 도시매력의 재정의 등 공통적인 전략적 전환의 키워드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뉴욕의 하이라인과 첼시마켓, 브루클린의 버려진 창고들이 갤러리와 작업실로 바뀌면서 창조문화산업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으며 도쿄 시부야역, 도쿄역, 신주쿠역, 긴자역 등 수십개의 역세권 개발·재개발이 이미 완료되었거나 현재 진행되고 있다.

부산 역시 지금이 ‘확장에서 내실로’, ‘속도에서 방향으로’ 도시전략의 대전환을 모색할 시점이다. 인구 400만 도시를 전제로 한 계획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330만 명 도시의 현실을 수용하면서 미래세대의 도시를 설계해야 한다.

축소도시는 도시정책의 미래를 위협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계획 철학을 요구하는 현실적 출발점이다. 부산이 그 전환의 선두에서 성장 중심 도시에서 회복 중심 도시로, 양적 도시에서 질적 도시로 변화한다면 축소의 위기를 기회의 서사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는 늘 성장만 하지는 않는다. 줄어드는 도시도 잘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줄어드는 과정을 어떻게 공존의 시선으로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산의 다음 30년은 그 선택의 시기다. ‘성장 없는 성장’을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