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총 1위 기업’이었던 HD현대마린솔루션(이하 현마솔)이 최근 본사를 부산 해운대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옮긴 것으로 확인(국제신문 지난달 30일 자 1면 보도)되면서 지역에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현마솔이 2021년 현대글로벌서비스 시절 연구개발(R&D) 인력을 판교로 보내기 시작할 때부터 지역에서는 부산을 떠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말 그대로 ‘부산 버리기 솔루션’이 가동된 것이다.
현마솔은 2016년 12월 현대중공업에서 조선·엔진·전기전자사업부 AS사업을 분리해 현대글로벌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부산에 직원 500명을 둔 신설 법인을 세웠다. 이후 설립 3년만인 2019년 ‘1억 달러 수출탑’, 2020년 ‘4억 불 수출탑’을 거머쥘 정도로 승승장구했고, 2021년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며 부산 매출 10위 기업에 올랐다. 당시 부산상공회의소 고위 관계자는 “이 회사는 최고의 실적을 내는 것보다 매년 꾸준히 성장한다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회사로 매년 30% 성장을 목표로 매출을 조절할 수 있는 기업이다”고 말했다.
승승장구하던 이 회사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2021년 무렵이다. 연구개발을 위한 고급인력 채용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수도권 출신의 인재는 부산을 찾지 않고, 지역 대학의 고급 인력은 수도권을 찾으면서 인재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그 무렵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은 최고급 IT 인력 등이 몰리는 ‘고급 인력의 산실’ 판교에 계열사 R&D 역량을 집적하기로 한다. 글로벌리서치센터(GRC)로 불린 이 곳에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계열사의 R&D 인력이 5000명 정도 근무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부산에서 간과했던 점은 ‘연구개발 인력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현마솔은 부산탈출 1단계 전략을 쓴다. 당시 현마솔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그룹 본사 차원의 연구개발 인력 집적화에 따라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우리 회사도 연구개발 인력 일부가 옮겨 가지만 본사 이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규모였다. 이 회사는 약 8개월 뒤인 2022년 7월 350명의 인력을 판교로 보냈다. 500명 중 해외지사 및 부산 외 지역 근무자 100명을 제외한 400명 중 50명만 부산에 남기고 영업직원까지 350명을 판교로 보낸 것이다. 회사측 한 실무자는 “우리 회사는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컨설팅이 주요 임무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 인력뿐만 아니라 영업직원 역시 관련기술에 정통한 고급인력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센텀시티에 본사를 뒀던 이 회사는 사옥의 5개 층 이상을 사용하다 인력의 판교행 이후 2개 층만 썼다. 이마저도 자회사 직원이 쓰는 공간까지 포함해서다.
부산시도 현마솔을 부산에 정착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현마솔을 붙잡기 위해 지역기업과의 애로 해소 간담회를 열어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그들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오너인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수석부회장(당시 HD현대 대표이사 사장)의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만나 현마솔의 부산 잔류를 요청했고, 본사가 부산에 남는 것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당시 현마솔 이기동 대표는 기자에게 “나도 부산대 출신이지만 부산의 능력 있는 인력은 우리 회사보다 수도권의 회사를 원하고 부산에 남는 인력만으로는 고급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있다. 판교로 가면 우리 회사 인력을 첨단 IT기업 등에 뺏길 우려도 있지만 인력을 계속 충원할 수는 있어 판교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더라도 본사는 부산에 그대로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껍데기’만 부산에 남겨두고 ‘본체’를 수도권으로 옮긴 현마솔은 2023년 사명을 부산글로벌서비스에서 ‘부산’을 떼낸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바꿨고, 지난해 5월 코스피에 상장했다. 그런 뒤 올해 3월 공시에 이전 소식을 알리며 약속을 깨고 본사를 수도권으로 옮겨버렸다. 이후 지난달 코스피200에 새로 편입되며 시가총액 8조 원을 돌파시켰다. 부산으로서는 뼈아픈 상황이다.
제21대 대선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은 해양수산부 및 HMM 부산 이전,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 실천에 이어 부산으로 이전한 기업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산시 역시 정부에 기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기업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 부산 이전 기업들이 지역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세심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 부산시민도 기업이 자발적으로 오고 싶어하는 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제2 제3의 현마솔을 또다시 양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유정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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