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good influence)’이란 누군가가 촉발한 선의의 행동이 주변 개인과 조직, 그리고 공동체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힘을 말한다. ‘선한 영향력’은 서로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고, 연쇄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궁극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지난 5월 새로운 교황으로 레오 14세가 선출되었을 때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전 세계가 환호한 것은 종교계의 수장이면서 항상 겸손하게 낮은 곳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해온 ‘선한 영향력’에의 기대 때문이다.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해온 평범한 김장하 선생이 이번 탄핵 국면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 또한 그의 ‘선한 영향력’과 관계 있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을 딛고 청렴한 법조인으로 성장한 한 재판관을 통해 일평생 그가 베풀어온 선행이 알려졌고, 사람들은 놀라움과 존경심으로 공감을 표했다. 김장하 선생은 가난한 주변의 학생들에게 셀 수 없는 무상의 장학금을 베풀었고, ‘천민인 백정도 평등해야 한다’는 1923년 진주 형평사운동(衡平社運動)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나눔을 받은 학생들은 학업을 마친 후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그들의 재화를 나누고 있고, 형평사의 만민평등사상과 가치는 진주시민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았다. 2023년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어른 김장하’의 영문제목은 ‘도시를 치유한 사람(A Man Who Heals the City)’이다.

평범한 누구라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1990년대 K-팝을 선도했던 가수 션은 매년 광복절마다 81.5㎞를 완주하며 ‘815런’ 기부금 행사를 열어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선행을 베푼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혹은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선한 영향력’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지녀온 독특한 유전적 본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진화인류학자 전중환은 ‘오래된 연장통’(2014)에서 인간이 자기가 속한 가족이나 집단에 협력적인 이유는 진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듀크대학교 교수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2021)에서 인류는 진화의 과정에서 심지어 경쟁자와도 교제를 나누며 더욱 인간적 관계를 형성해 왔다고 말한다. 생물학자 최재천은 인간은 태생적으로 공생하고 협력하며 생존해온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적 존재이며,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은 종종 소시민 영웅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인기 웹툰‘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 김독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멸망에 직면한 세상에서 주변 인물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며 세상을 지켜내는 영웅으로 등극한다. 강형철 감독의 영화 ‘하이파이브’(2025)에서는 다섯 명의 선남선녀들이 강력한 힘을 가진 사이비교주에 맞서 서로 협력하고 희생하면서 거악을 물리친다. 협력하는 개인의 ‘선한 영향력’은 극한 상황에서 더욱 빛나며, 누구나가 공동체를 지키는 영웅이 될 수 있다.

내일은 제21대 대통령선거일이다. 투표는 또다른 형태의 ‘선한 영향력’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정은 구성원들의 참여로 위기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발전시켜 왔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촉발된 이번 대선에서 민주주의 복원과 민생 회복은 제일 중요한 시대정신일 것이다. 각 정당의 후보들이 타협의 정치에 실패한 지난 정치권의 풍파에 대해 국민 앞에 진심어린 공동의 반성과 사죄를 내놓지 않는 점은 유감이다. 차선도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서글픈 현실이지만, 투표에 참여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선한 영향력’ 행사일 것이다. 바로 내일, 국민이 위탁한 주권과 권력으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새 대통령이 출현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