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보철강 삼미그룹 진로그룹 부도에 이어 그 해 10월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국제신용평가회사 S&P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떨어뜨렸다. 무디스는 1997년 말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7단계나 낮췄다. 피치도 강등시킨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자 외국 자본들은 빠져나갔다. 외환위기가 그렇게 확대됐고, 한국 신용등급이 외환위기 직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13~18년 걸렸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의 힘은 국가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했다.

무디스가 지난 17일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조정했다. 1949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최고 신용등급을 박탈한 셈이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이자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지만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로 강등됐다. 이로써 미국은 피치와 S&P에 이어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트리플A’ 등급을 잃게 됐다.

미국 국가 부채는 지난 15일 기준 약 36조2200억 달러(약 5경744조 원)다. 이는 국가 탄생 이래 연방정부에 누적된 부채의 원금과 이자 총액이다. 그런데 미국의 재정적자는 앞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감세를 공약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월 초 이미 법정 부채 한도를 넘겼고 재무부는 채무 불이행을 막기 위한 특별 조치를 시행 중이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이 부채에 눌려 국가 부도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당장 채권과 주식 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관세로 채무를 갚겠다는 트럼프 정책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무디스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다수 무역 상대국과 개별 협상 대신 일방적으로 새로운 관세율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아시아통화 절상 압력이 이어지면서 우리 원화 환율 불안 우려 또한 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가 혼란 상태에서 우려했던 부분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었다. 무디스는 지난해 말 수개월간 진행된 정치적 위기를 들어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a2에서 Aa3로 강등했다. 다행히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 (Aa2) S&P(AA) 피치(AA-) 등 국제 신용평가사 3곳에서 모두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국가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고, 정치적 갈등이 극심한 만큼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