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離婁)는 눈 밝은 사람으론 첫 손에 꼽히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요즘말로 천리안이다. ‘맹자’(孟子) 네 번째 편 제목이 ‘이루’다. 그 시작이 이루의 눈 밝음이다. 손재주 좋고 귀 밝은 이가 잇따른다. 눈 밝은 이루를 앞세운 건 예나 지금이나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겠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은 900냥이다.

‘논어’(論語)와 더불어 동양 고전을 대표하는 ‘맹자’다. 그 생명력을 고려할 때 이루를 통해 전하려는 뜻이 분명하다. ‘이루의 눈 밝음과 공수자의 손재주로도 규구(規矩)를 쓰지 않으면 네모 반듯한 모양이나 둥근 모양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서 규구는 원을 그리는 컴퍼스와 사각형을 그리는 곱자다. 조금 더 나가 규구준승(規矩準繩)으로 이어진다. 준(수평기)은 평평함을 만들고 승(먹줄)은 곧음을 만든다. 원과 네모와 수평과 직선은 곧 생활의 규범이자 정치의 핵심이다.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게 정치라 했다.

다 아는 이야기를 왜 들먹이냐 하겠으나 세상 이치가 그렇다. 몰라서 못하는 것도 문제이나 알면서 못하면 더 문제다. ‘맹자’엔 규구와 준승 사이에 이런 시구가 있다. ‘잘못되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음은 옛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몰랐다면 알아서 실천하고, 알고 있다면 제대로 하라는 의미다.

중국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 두 신은 컴퍼스와 곱자를 들고 있다. 사람이 편하게 살려면 법이 필요하고 그 법을 잘 지켜야 한다. 규구준승은 원 사각형 수평 수직, 곧 천지사방이 제대로 규칙을 지키고 조화로움이다. 요즘 눈 밝은 사람이라면 이 이치를 헤아릴 줄 아는 이와, 그런 능력을 가진 이를 고를 줄 아는 이라는 다중적인 의미이겠다. ‘맹자’에선 바른 마음을 가지고 이치를 헤아리며 잘 써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그 바탕은 뭐니 뭐니 해도 스스로를 닦는 일이다. 정치의 기본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고, 이런 소임을 자청한 사람을 잘 골라 뽑는 일이 선거 아닌가.

21대 대통령을 뽑는 공식 선거운동이 12일 시작됐다. 모두 7명이 나섰다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3강 구도를 형성한 대선 레이스다. 어처구니 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파면된 대통령과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찾는 선거다. 정치의 기준과 금도를 확인하는 선거여야 한다. 새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모습을 앞서 보이며 비전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런 사람을 고르는 눈 밝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