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에게는 자신의‘안전과 생존’이 최우선적 목표다. 기업도 그렇고 관료조직도 마찬가지다. 관료들이 책임 회피를 위해 ‘실수(실장 지시사항)’ ‘국이수(국장이 2번 수정 지시)’로 표시한 서류를 별도 보관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윤석열 정부 출범 1년도 되기 전이었다. 나도 적지 않게 겪었다.
몇 년 전 필자가 좌장을 맡았던 플랫폼 법안 공청회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농어촌 빈집을 새로 고쳐서 여행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자는 플랫폼 사업에 대해, 농림수산부가 찬성하면서도 ‘반경 5㎞ 이내 모든 농가의 동의를 받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이다. 대놓고 반대하기는 부담스럽지만,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민원에 따른 부담은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당연히 사업은 추진되지 못했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AI위원회는 지난해 9월 출범한 뒤, 반년 만에야 누리집을 오픈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폼’ 잡는 것은 좋아하지만 인공지능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관료적 스타일이다.
세계 최대 투자기업 버크셔 해서웨이의 CEO 워런 버핏은 “수영장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고 수영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버핏의 이 말은 주식 시장이나 투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큰일이 닥쳤을 때 조직과 개인의 진면목이 확인되기도 한다. 학벌이나 학력(특히 외국 박사), 각종 시험(고시 등)을 통과한 고위 관료들은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과도할 정도의 신뢰를 받아왔다. 이들은 일반인보다 뛰어난 업무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투철한 윤리의식으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줄 것으로 믿어져 왔다. 이른바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이다.
그러나 실제는 어떨까?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한국의 국가 총생산(GDP) 순위는 세계 10위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3년 만인 2023년에는 14위로 추락했다. 경기가 얼마나 좋지 않으면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은 법인세를 낸 곳은 삼성도, 현대도, LG도 아닌 한국은행이었다. 한은의 해외투자의 성과도 있지만, 부자 감세로 생긴 재정적자를 메우느라 정부가 ‘마이너스 통장’처럼 한국은행 돈을 빌려 쓰고 지급한 이자 덕분이다. 정부가 지난 2년간 한은에 지급한 이자는 9309억 원이나 된다.
전문성과 능력의 지표인 세수 예측은 더 엉망이다. 2023년 법인세율 오차율 31%, 24년 24%로 구멍가게보다 못한 수준이다. 코로나 국면도 아니고 글로벌 금융위기도 아닌데 윤 정부의 재정적자는 2022년 -117조 원, 2023년 -87조 원, 2024년 -104조8000억 원이다. 그런데도 올해 깎아주는 세금은 78조 원으로 역대 최대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한 지역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은 90%가 날아갔다. 2003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그냥 쉬었다’고 응답하는 청년이 사상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었다. 20대 후반 청년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12년 만에 취업자 수가 가장 적다.
청년 실업률은 7.5%로 코로나 이후 가장 높고, 청년 10명 중 4명은 부모에 얹혀산다. 이 모든 것은 외국 명문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한국 관료들이 불과 3년 만에 윤석열 정부와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이들의 민낯은 더욱 뚜렷해졌다.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가 더 어려워져 달러가 더 강해질 것이라며 미국 채권에 2억 원을 투자하고, 신고 재산이 108억 원인 검찰총장 딸은 가난하고 기회가 없는 사람을 위한 햇살론 대출을 받았다. 법 해석도 마음대로다. ‘해야 한다’는 법 규정은 언제까지라는 기한이 없다고 강변하고, ‘지체없이’라는 대목은 ‘처벌 규정’이 없다고 미룬다. 권한대행은 ‘소극적 권한 행사’에 그쳐야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설 특검 임명이나 법안 거부권 행사도 주저않는다. 일본조차 최대한 미루겠다는 미국과의 관세협정은 서두르겠다고 한다. 전직 문광부 서기관 출신의 책 제목처럼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일삼으며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진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자문한 것으로 알려진 안보전문기자 박성진은 ‘용산의 장군들’에서 “김태효(국가안보실 차장)같은 사람 10명만 있으면 한일합방을 할 수 있다”는 일본 외교관의 충격적인 발언을 소개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의 특징으로 관료제와 무속에 의존하지 않는 탈주술을 들었다. 그는 저서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말한다. 관료는 ‘정치’가 아닌 ‘행정’을 하는 집단으로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뜻이다. 지금 한국은 위기의 상황이자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복지부동하는 관료’ ‘영혼이 없는 관료’가 차라리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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