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거래에 사용되는 돈, ‘화폐’와 이를 주고받는 수단은 기술 발전에 발맞춰 진화해왔다.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이후 인천항으로 수송된 것은 군인과 물자만이 아니었다. 당시 피난수도였던 부산으로 임시 이전한 한국은행 본부(현 중구 대청동 소재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에서 장기영 부총재(훗날 한국일보 창간) 지휘하에 반출된 한국은행권도 부산항에서 미군 상륙정에 실려 인천항으로 수송됐다. 북진 중인 국군의 군자금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1950년 6월 12일 창립했으나 백·오십·십 환화 등 주화를 처음 발행한 것은 물가상승세가 진정된 1959년 10월이었다. 당시에는 한국은행권과 주화 외에도 어음과 수표 등이 거래에 자주 사용되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공과금이 은행 예금에서 자동 인출되는 지로 제도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송금하려면 은행창구를 방문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수취인 계좌에 입금되기까지 하루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불편은 1990년대 후반 대규모 광대역 통신망 구축으로 점차 해소되기 시작했다. 2001년 한국은행과 금융권이 공동으로 세계 최초 24시간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도입함에 따라 금융 소비자들은 은행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자금을 손쉽게 이체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의 과세표준 양성화 정책에 따라 신용카드가 소액거래에까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모바일 금융의 발전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2007년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한 금융서비스가 일상화됐고, 2015년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지 이후 비밀번호 생체정보 등 간편 인증수단을 이용한 각종 ‘페이’ 서비스가 확산되었다.
2009년 등장한 비트코인(Bitcoin)은 화폐 개념 자체를 재정의했다. 탈중앙화를 기치로 내건 비트코인은 초기에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화폐로 주목받았으나, 현재는 가격 변동성이 큰 투자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미국 달러화에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기존 화폐의 신뢰성을 유지하면서 블록체인의 효율성을 더한 결제 수단으로 점차 그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달러화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달러화 패권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관련 입법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각국의 관계 당국은 화폐 주권, 소비자 보호, 혁신 지원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전통 금융권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자체 코인을 발행해 국가 간 송금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으며, 증권업계는 실물자산 금융상품 등의 일부를 조각 투자할 수 있는 토큰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 거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중개 비용을 절감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행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공동으로 지난 3월 24일 ‘디지털화폐 테스트(프로젝트 한강)’ 일반이용자 실거래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선착순으로 모집된 국민 체험단은 4~6월 중 전국의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예금토큰’을 물품 구매시 사용할 수 있다. 예금토큰은 예금자보호대상이라는 예금의 법적 장점과 소유권 이전이 제3의 중계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신속히 처리되는 토큰화 기술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 이에 물품 구매 시 구매자의 예금토큰이 즉시 판매자에게 이전되고 보유한 예금토큰은 엄격한 법적 보호를 받기 때문에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문제나 티몬·위메프 사태와 같은 정산지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한편 서울 부산 대구에서는 바우처 프로그램도 병행된다. 특히 부산에서는 신라대와 부산은행이 협업해 신라대 캠퍼스 안팎의 20개 상점에서 디지털 바우처 기능 실증 사업을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상용화된다면 은행권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와 판매자를 두고 신용카드사 및 빅테크 기업과 경쟁하게 되고, 소비자와 판매자는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누리게 될 것이다. 모쪼록 이번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우리나라가 K-드라마, K-팝에 이어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