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북소리는 부지런하게 찾아왔다가 게으르게 떠나간다.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때 동동동동 찾아왔다가 어두운 밤 달이 두둥실 뜰 때 동동동동 떠나간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불청객이다. 이 불청객이 오히려 내 가정생활에 한 리듬이 되고 있다. 아침잠 깨우고 저녁잠을 설치게 해도 밉지 않다. 아무래도 이 소리는 앙증맞은 데가 있고 사랑스러운 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아파트에서 30년가량 살고 있다. 이사를 하지 못한 것은 경제적 이유가 크지만, 이웃이 좋아 그렇게 살았다고 해두자. 한 예로 아파트 통로를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부부 동반 모임을 하고 술잔을 기울인 때도 있다. 그 사람들은 사업가 공무원 회사원 등으로 다양했다. 이렇게 소통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지금은 나와 회사에 다니던 사람만 남아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해 공무원이던 우리 집 위층 사람이 떠난 자리에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지금은 우리 집 천장으로 동동동동 작은 북소리가 찾아온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가져올 때,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 찾아온다. 가끔 낮에 혼자 있을 때는 찾아오지 않는다.
직박구리가 살구꽃을 따 먹는 이른 아침, 거실 창가에 앉아 가뭇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의 동동동동 작은 북소리를 듣는다. 아마도 희망의 소리가 이러하다는 듯 울림을 준다. 썩 일어서서 달려나가는 소리 같아서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예고 없이 사라진다. 새싹처럼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삶 또한 이러할 터, 잠시 거쳐 가는 존재의 기쁨으로 생각한다.
봄의 들판 가운데 초등학교 시절 앉았던 나무 의자에 내가 앉아 있는 상상을 해본다. 사방의 둘레는 조용하고 오는 사람은 없다. 오는 사람이 있어야 의자를 물려줄 수 있다. 오는 사람 없이 내가 떠난다면 의자는 빈 채로 남아 있어 허무할 것이다. 북을 치며 누군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 북소리는 나를 자유롭게 떠날 수 있게 하는 희망이다. 북소리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빈 의자에는 누가 앉을 것이며 자연의 순리는 어떻게 설명할까?
보이지도 않는 북소리가 늘 웃음을 띠게 한다. 북소리를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을 듣듯 즐거워진다. 때아니게 크리스마스 캐럴 ‘북 치는 소년’이 생각난다. 가난한 소년이 아기 예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드릴 선물이 없어, 마리아께 자기가 가진 북을 쳐도 되느냐고 물었다.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성을 다해 북을 치자 아기 예수가 미소 지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북소리는 물질적인 선물보다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전해준다.
작은 북소리는 나이 들어가는 내가 외로울 것이라고 짐작한 듯 내 외로움을 깨트려 준다. 미국의 시청각장애인으로 작가이자 교육자인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소리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의 마음을 만진다”고 말했다. 천장으로 오는 북소리가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북소리에 쓸쓸함은 사라지고 거기에는 공감이 자리한다. 아기 울음소리가 자라 북소리 되어 찾아오듯 머지않아 예쁜 소녀가 “아저씨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로 만나는 기대를 해본다.
우리 집 아이들도 북을 치며 성장했을 것 같다. 내가 작은 북소리를 듣기 전에는 몰랐다. 아래층에서 북소리가 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간혹 북소리가 소란하다며 아래층 사람이 위층 사람을 찾아가는 일이 있다. 그러면 위층 사람은 조금 조심하고, 아래층 사람은 희망의 북소리로 받아들여 조금 이해하면 어떨까!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작은 북소리가 많이 들려오는 세상이면 우리네 삶 또한 넉넉해지지 않을까?
작은 북소리는 부지런하게 찾아왔다가 게으르게 떠나간다. 북소리가 떠난 뒤끝에 스며든 따뜻한 아침햇살에 놀라 기지개를 켜며 베란다 창문을 연다. 위층 꼬마 숙녀가 잡았던 엄마 손을 놓고 노란 어린이집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저 아이는 작은 북소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까? 딴은 어린이집 등원 준비로 동동거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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